아프간 경제 주요 축인 '국제 원조' 중단 타격
국제사회 인정받으려면 권력 분점 필요해
아프간 전 정부 관료·저항 세력 등과 대화 시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 새 정부를 꾸리려 하는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포용적 정부’ 구성을 선언했으나, 외부 세력을 얼마나 참여시킬지가 문제다. 내부 결속을 다지려면 다른 정파에 많은 권한을 나누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요식 행위’ 수준으로 새 정부 구성안을 내놓기엔 아프간 안팎의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포용성을 담보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도 일정 수준의 권력 분점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붕괴 직전인 국내 경제 상황이 탈레반엔 압박 요인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현지시간) “아프간 경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국제 원조와 해외 송금이 모두 막혔다”며 “탈레반은 다른 정치 세력과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은 이미 아프간에 대한 지원금을 임시 중단했고 국제통화기금(IMF)도 원조를 멈추기로 한 상태다. 새로운 탈레반 정권의 정당성을 아직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여기에 금융기관들의 송금 업무 중단으로 해외 거주 아프간인들이 고국에 보내는 외화도 끊겼다. 돈줄이 막히자 아프간 내 밀가루, 식용유, 가스 등 생필품 가격은 50%나 급등해 일상생활조차 힘들어졌다.
일단 탈레반은 대화를 시작했다. 2주 안에 내놓겠다고 밝힌 포용적 정부안을 만들기 위해 각계각층과 협상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우선 과거 아프간 정부 인사들이 테이블에 참여했다. 21일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과 회담을 이미 마쳤고, 오마르 자킬왈 전 재무장관도 탈레반과의 권력 분담 협상을 위해 이번 주 카불로 복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전직 아프간 정부 관리들은 탈레반에 시민의 자유와 소수자,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확답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적 협의를 위해 아프간 전통 부족 원로회의인 ‘로야 지르가’도 열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날 카불에서 열린 회의엔 울레마(이슬람 신학·율법학자) 800여 명과 탈레반 정치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다만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정식 국호)는 모든 정치 세력과 민족을 대표할 것”이라고 했던 탈레반의 종전 선언과 달리, 회의 참석자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분권통치는 내전 가능성 차단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최후의 반(反)탈레반 무장세력인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RF)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권력 분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협상 성과에 따라 무력항전을 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알리 나사리 NRF 대외관계 책임자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아프간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문화 국가여서 권력을 나눠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탈레반도 대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21일 저항군에 뺏긴 북부 지역 3곳(반누, 풀에헤사르, 데살라)을 이날 재탈환했다고 밝히면서도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며 저항군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여지를 둔 것이다.
물론 양측 모두 마지막 결전의 준비 태세까지 늦춘 건 아니다. 탈레반은 NRF 저항 거점인 판지시르 계곡 입구 근처에 병력을 집결했다. NRF도 “수천 명이 싸울 준비가 됐다”며 결사항전 의지를 밝혔다. ‘천혜의 요새’로 불리는 판지시르 계곡은 과거 아프간 민병대가 소련에 항전하며 끝까지 지켜낸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은 이날 재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 대행에 굴 아그하, 사드르 이브라힘을 각각 임명했다. 정보국장엔 나지불라, 카불 주지사와 카불 시장으로는 물라 시린, 함둘라 노마니가 각각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 구성에 박차를 내고 있는 모습인데, 이들이 정확히 어떤 인물들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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