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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숨지면 성범죄 수사 끝? 피해자 더 큰 지옥 빠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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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숨지면 성범죄 수사 끝? 피해자 더 큰 지옥 빠뜨려"

입력
2021.08.23 06: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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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 변호사 미투 사건' 이은의 변호사>
경찰에 상세 수사내용 불송치 결정문 받아내
검찰엔 '피의자 있다면 기소했겠나' 의견 요구
"언론플레이? 피해자가 선례 남기고 싶어해"

'로펌 대표 미투' 사건 피해자 법률대리인을 맡은 이은의(47) 변호사가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이은의 법률사무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로펌 대표 미투' 사건 피해자 법률대리인을 맡은 이은의(47) 변호사가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이은의 법률사무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이른바 '초임 변호사 미투 사건'의 피해자 측 행보는, 피의자가 사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 관례를 바꾸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인 로펌 대표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진행했던 수사 내용을 상세히 담은 7쪽 분량의 불송치 결정문을 피해자에게 송달했는데, 이는 '(피의자 사망에 따라) 공소권 없음'이라고 짧게 기술했던 기존 결정문과 차원을 달리한다. 피해자 측은 검찰에도 '피의자가 살아있었다면 기소했을지 알려 달라'는 취지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성폭력 가해자가 죽으면 피해 사실마저 묻히는 관행에 재차 균열을 내려는 시도다.

이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이은의(47) 변호사는 20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진행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라며 최근 행보를 설명했다. 그는 "성범죄 사건이 공론화된 뒤 피의자가 숨지면 피해자는 더 큰 지옥에 빠진다"며 "수사기관이 피해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는 일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양예원 사건'에서 절감한 교훈

2018년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유튜버 촬영물 유포 및 강제추행 사건' 제1회 공판을 방청한 피해자 양예원(가운데)씨와 이은의 변호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유튜버 촬영물 유포 및 강제추행 사건' 제1회 공판을 방청한 피해자 양예원(가운데)씨와 이은의 변호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스튜디오 불법 촬영을 폭로한 유튜버 양예원씨 사건은 이 변호사에게 큰 성장통이 됐다. 양씨가 스튜디오 실장 A씨에게 보냈다는 '촬영 일정을 잡자'는 메시지가 공개된 후, 양씨에겐 "피해자가 어떻게 저런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겠느냐"라는 공격이 쏟아졌다. 무방비였던 양씨가 이 변호사를 찾아온 지 일주일 뒤엔 피의자 중 하나였던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피해자를 향한 억측과 비난은 가중됐다. 급기야 이 사건은 '억울하게 죽은'이란 수식어와 함께 회자됐다.

이 변호사에겐 성폭력 피의자가 숨졌을 땐 수사기관에 피해 사실을 인정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뼈아픈 경험이었다. "그때도 불송치 결정문을 자세하게 받아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로펌 미투 사건은 양예원씨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어요. 피의자 사망이 수사 종결로 자동 귀결되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살리려면 어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지 알게 됐으니까요."

변호사도 예상 못 했던 작은 변화

이 변호사 또한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그토록 상세하게 수사 내용을 공개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관행대로 짧은 결정문이 나오더라도 그것을 비판하고 기록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미리 마음을 다잡았던 게 사실"이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이번과 같은 불송치 결정문이 나오면 피해자는 향후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서 "수사기관의 변화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본인은 경찰의 조치를 다행스럽게 여기면서도 혐의에 대한 판단이 없는 점은 아쉬워했다고 한다.

피해자 측은 더 큰 변화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검찰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피의자가 없는 사건인 만큼 검찰이 관례대로 불기소 결정을 내리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검찰이 결정문에 기소권을 행사했을 만한 사안인지를 밝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변호사는 "수사가 끝난 상황인 만큼 기소에 대한 판단을 밝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자세한 불기소 이유서가 사법정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언론플레이? 피해자는 선례 남기고 싶어해"

이 변호사의 별명 중에는 '버려진 사건만 줍는 변호사' '광인끈끈이' 등이 있다. 이름난 변호사마저 수임을 거부한 사건을 이 변호사가 맡아 치열하게 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피의자 사망이나 여론 포화 등 여러 악조건에 있던 사건들도, 언제나 싸우고 나면 변화의 초석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선 이 변호사를 향해 "피해자를 부추겨 자세한 피해 내용을 보도했다"고 억측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사건을 공론화하는 모든 과정엔 피해자의 의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비장애인 성인 여성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피해자는 모든 과정을 선례로 제시하고 유사한 피해를 당한 여성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판결문까지 받아내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처를 회복하는 방식은 피해자마다 다르고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 선택에 달린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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