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 '국가대표' 연출한 이은규 PD 인터뷰
"머리카락 기르는 것 때문에 (관계자들과) 다퉜던 일도 있었어요. 축구하기도 바쁜데 자꾸 머리 얘기를 하니까 기분도 안 좋고, 축구만 잘하면 되는데 자꾸 외적인 걸로..."
잉글랜드 명문 구단 첼시FC 위민에서 뛰는 지소연은 짧은 머리카락을 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 12일 방송된 KBS '다큐 인사이트-다큐멘터리 국가대표(국가대표)'에서 그는 "'여자가 무슨 축구냐'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공을 찼다"며 "그러면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있고, 저도 발전을 하면서, 그렇게 다시 운동으로 (주변의 반대와 편견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의 기록(A매치 최다 57골)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이 걸출한 축구선수는, 그래서 세계 최고의 남자 축구선수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의 이름을 딴 '지메시'라고도 불린다. 정작 본인은 그냥 '지소연'이길 원한다. 다른 누구와 비교되기보단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싸워온 운동선수이기 때문이다.
2020 도쿄올림픽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국가대표'라는 제목을 내건 다큐멘터리가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소연과 박세리, 김연경, 남현희, 김온아, 정유인 등 각자의 분야에서 정상에 선 전·현 여성 국가대표 선수 6명의 목소리를 오롯이 담고 있어서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이번 작품은 없었을 거예요. 단순히 셀러브리티가 아니라 밑바닥에서부터 자력으로 성과를 이뤄낸 주체성이 강한 분들이라선지 그들의 말엔 힘이 실리죠. '국가대표'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 아닐까요." '국가대표'를 연출한 이은규(34) PD의 말이다.
'국가대표'는 여성 국가대표 6명의 성취를 '평가'하려는 어설픈 시도를 하지 않는 대신 이들을 중심에 세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낮게 책정된 상금과 연봉부터 열악한 지원, 무관심, 경기력과 상관없는 외모 품평, 여성지도자의 부재 등 "여자는 주인공이 아니다"라는 스포츠계 편견과 배제를 여과 없이 펼쳐놓는다. 이 PD는 "동시대를 관통하는 뜨겁고, 당사자성이 강한 이슈지만 상식 수준에서 충분히 모두가 공감할 지점이 분명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국가대표'는 끊임없이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려는 차별적 인식에 여성 선수들이 어떻게 맞서왔는지도 함께 비춘다. '배구 황제' 김연경은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열악하거나 불공평할 때 큰소리를 많이 냈다"고 했다. 지소연은 "'이게 바뀔까' 의구심이 있었는데 매년 하나씩 이뤄져 가는 걸 보니까 계속 목소리를 내고 바꿔나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국가대표'는 이들의 목소리로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으면서 더 멀리 나아간다.
시청자 반응은 열렬하다. KBS 시청자 게시판은 "더 많은 여성 선수들의 노력이 수면 위로 도드라지고 기억되면 좋겠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고가 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큰 자극은 없는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이 성별에서 비롯된 편견에 갇히지 않고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등 응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2014년 입사해 '역사저널 그날' '추적 60분' 등을 거친 이 PD는 "다큐멘터리는 일차원적으론 지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도 있겠지만 마지막까지 다 보고나면 삶을 살아가는 데 긍정적 힘, 그런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게 컸다"고 전했다. '국가대표'는 지난해 6월 선보인 '다큐멘터리 개그우먼'과 지난 4월 '다큐멘터리 윤여정'에 이은 아카이브×인터뷰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저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 일을 너무 좋아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고요. 제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좀 더 이야기가 확산됐으면 합니다. 동시대 여성과 공유할 수 있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게 앞으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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