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미쓰비시 한국 기업 채권 압류 결정
LS엠트론이 건넬 물품대금 8억여원 대상
거래 불인정 땐 집행취소에 법적 분쟁 소지
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목적으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보유한 8억여 원 상당의 한국기업 물품대금 채권을 압류·추심하라고 결정한 가운데, 이들 채권 추심이 실제 배상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국내 법원의 배상 명령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현금화'가 보다 손쉬운 물품 대금의 압류와 추심이란 점에서 징용 피해 배상이 목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편에선 걸림돌 역시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권 추심 대상 기업 거래처가 배상 책임이 있는 미쓰비시중공업인지, 자회사인 미쓰비시중공업엔진시스템인지에 대한 사실관계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자칫 압류와 추심의 효력 자체가 무효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일 법조계와 LS그룹에 따르면, LS엠트론은 전날 법원으로부터 미쓰비시중공업에 지급할 물품대금 8억 5,319만 원을 압류 및 추심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018년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이에 따라 이달 초 미쓰비시중공업이 LS엠트론에 대해 가진 물품대금 채권을 압류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이 받을 돈 8억여 원을 압류하는 결정을 내리는 동시에, 이 돈을 피해자들이 직접 받을 수 있도록 추심 명령을 함께 내렸다. 피해자 측 대리인단은 "압류된 채권액 8억 5,000여만 원은 피해자 4인의 손해배상금 총액 3억4,000만 원과 그에 대한 지연손해금과 집행비용 등의 합계"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결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첫 관문은 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법원이 그간 배상책임이 인정된 일본 기업의 특허권이나 주식을 압류한 사례는 있지만, 채권을 압류해 추심 명령을 내린 구체적 조치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앞서 대구지법 포항지원이 내린 일본제철의 한국 자산인 피엔알(PNR) 주식에 대한 압류 명령, 대전지법의 미쓰비시중공업 상표권 압류 명령 등 이전 사례와 비교해봐도 이번 물품대금 채권 압류는 현금화가 쉽다는 점에서 실제 배상을 받기까지 보다 용이할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제3채무자' 격인 LS엠트론이 배상과 관련한 변수로 등장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직접 거래 관계를 맺은 게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LS엠트론 관계자는 "현재로선 회사의 거래 상대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아닌 미쓰비시중공업엔진시스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S엠트론이 최종적으로 미쓰비시중공업과의 거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의견을 낼 경우, 압류·추심 집행 취소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LS엠트론과 미쓰비시중공업 간 채권 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리인단의 한 변호사는 "LS그룹의 올해 3월 사업보고서와 LS엠트론 트랙터 카탈로그 등을 통해 LS엠트론과 미쓰비시중공업 간의 채무관계를 확인한 것"이라며 "LS엠트론도 압류 결정문 송달 이전까지는 미쓰비시중공업과의 거래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LS엠트론이 곧 법원에 제출한 제3채무자 의견서에 따라 사실관계 확인 이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고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쓰비시 측은 이날 "현재 법원 판단 내용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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