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철학자로 손꼽히는 소크라테스는 평생 이렇다 할 공적인 활동을 펼치지 않았다. 전쟁에 여러 차례 출전했지만 대단한 무훈이 남아 있지는 않다. 참전은 당대 50세 이전의 아테네 남자에게 의무사항이었다. 집안 살림은 아내 크산티페가 도맡았다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많은 현대인이 소크라테스를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을 남긴 사상가로 기억하지만 이것 역시 오해다. 3세기에 쓰인 ‘그리스 철학자 열전’에 따르면 그 말은 소크라테스보다 150여 년 먼저 태어난 탈레스가 남겼다. 소크라테스가 정치와 경제 등 공적 영역에서 남긴 업적은 없는 셈이다. 이쯤 되니 궁금하다.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이유가 뭘까?
철학자 김용규는 듣는 사람을 머리끝까지 화나게 만들었던 소크라테스 특유의 대화법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그는 날마다 저잣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붙였다. 진리에 도달할 때까지 상대의 말에서 편견과 궤변, 억견을 제거해 나갔다. 김용규가 ‘소크라테스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생각의 기술, 논박술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논박술은 새로운 사실이라고는 조금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빼기의 기술’이지만 지난 2,400여 년 동안 인류의 정신세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다고 김용규는 강조한다. 인류문명을 떠받치는 인간 정신의 원형, 이성을 깎아낸 도구가 논박술이었다는 이야기다.
소크라테스의 논박술은 상대방의 무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실에 다가간다. 예컨대 소크라테스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 자신은 알지 못한다는 단서를 달아서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상대방에게 던진다. 상대방들은 대부분 그 주제에 대해서 전문가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물음에 대해서 자신들의 지혜를 드러내는 주장(A)을 답변으로 제시한다. 소크라테스는 A로부터 통념에 부합하는 명제인 B, C, D 등을 추론해내고 상대방들은 여기에 흔쾌히 동의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A가 통념에서 벗어나거나 B, C, D와 모순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A가 틀렸다고 결론을 내린다. 상대방들은 새로운 답을 계속 제시하지만 결국 소크라테스의 논박을 통과하지 못하고, 자신이 안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사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나는 잘 모르는데 당신은 알겠지요?”라는 끊임없는 공세를 버티기가 어렵다. 전문가 체면에 모른다고 물러설 수도 없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보편적 정의를 제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김용규는 지적한다.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지식의 대부분이 개인적인 지각이나 경험, 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적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과처럼 눈에 보이는 사물조차 ‘본질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어른 주먹만 하고 둥글고 빨갛고 달고 신맛을 가진 나무 열매라고 설명한다면 당장 반박에 부딪힌다. 자두나 복숭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건과 절제, 용기, 정의 같은 추상적 개념을 설명하기란 더욱 어렵다.
소크라테스의 논박술은 말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사회에서 정신적 오물을 제거하는 사유 방식으로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에게 계승돼 서구문명을 꿰뚫는 정신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진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반증 가능성을 제시한 20세기의 대표적 과학철학자 칼 포퍼에게 ‘우리 시대의 소크라테스’라는 평가가 내려진 까닭이다. 김용규는 키르케고르부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슬라보예 지젝에 이르기까지 그 전통을 추적해 나가면서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며 모든 인간의 지식은 틀릴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에 넘쳐나는 가짜 뉴스와 날조된 지식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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