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년, 한국경제 버팀목 역할
혁신하는 농협 등 100년 농협 청사진 제시
디지털 혁신·ESG 경영 적극 도입 박차
“농업이 대우받고, 농촌이 희망이며, 농업인이 존경받는, 함께하는 100년 농협을 구현하겠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13일 열린 농협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60년의 기적을 만든 자긍심과 자신감으로 100년 농협의 시대를 열어가자”며 이렇게 밝혔다. 전 세계 농업협동조합 중 매출액 기준 2위이자, 208만 명의 조합원을 둔 농협이 ‘100년 농협’을 향한 청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한 실행 방향으로 △농협다운 농협 △혁신하는 농협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존경받는 농협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 회장은 “농협과 함께하는 100년은 농업·농촌의 지속 성장을 이끄는 시간이자, 농업인의 헌신에 보답하는 희망의 100년이 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보릿고개 넘어 쌀 자급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
1961년 8월 15일 출범한 농협은 시대에 따라 역할을 달리하며 농업·농촌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설립 직후인 1960~1970년대엔 식량증산운동으로 먹거리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며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했다.
당시 농어업은 국내총생산(GDP)의 30~40%를 차지했으나, 외국에서 식량 원조를 받아야 할 만큼 생산성이 낮았다.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이 마땅치 않아 농민들이 연간 금리 60%에 달하는 사채를 끌어다 농사에 필요한 돈을 대던 시절이었다. 악성 고리채가 농업경쟁력의 발목을 잡자 박정희 대통령이 “해결 방안을 고민해보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협은 비료·농약 등 영농자재 공급과 상호금융 도입·확대에 주력했다. 1969년 1억3,000만 원 규모의 상호금융이 도입되면서 농가의 사채의존도는 1971년 60.0%에서 1990년 13.9%로 급감했다.
그 결과 한국은 1976년 최초로 쌀 자급을 달성할 수 있었다. 원활해진 농업자금 공급과 풍부해진 영농자재가 농가의 생산성을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농협이 농촌과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져 주지 않았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발전은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네스북에 오른 쌀 수입 반대 서명운동
농기계 보급 사업으로 농업의 현대화를 지원해 온 농협은 1980년대 들어 큰 변화를 맞았다. 민주화 바람에 따라 1988년 농협법이 개정, 조합원 투표에 의해 조합장이 선출되고 조합장의 투표로 중앙회장을 뽑게 된 것이다. 이전까진 정부가 조합장을 임면했다. 바뀐 법에 따라 농협은 1990년 4월 최초의 민선 중앙회장을 선출했다.
민주적 운영방식이 이식되면서 농협은 ‘주인’인 농민을 위한 대변자로 거듭났다. 농민 관련 조세 감면에 나서 1991년 농민조합원의 농협예금 이자소득 비과세 한도가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확대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의 쌀시장 개방 움직임에도 적극 반대했다. 1989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외벽에 내건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당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따른 농산물 수입개방 확대 흐름과 맞물려 큰 호응을 얻었다. 농협이 실시한 쌀 수입 개방 반대 서명운동은 1991년 11월 11일 시작한 지 43일 만에 1,307만8,935명이 동참했을 정도다. 이는 최단 기간 내 최다 인원 서명이란 세계 진기록으로 인정받아 이듬해 6월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농협 각 사업의 생산유발금액 77조 원
농협은 농업·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업 역량도 강화해왔다.
유통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1995년엔 유통 전문 자회사인 농협유통을 설립했고, 3년 뒤엔 서울 양재동에 하나로클럽을 열었다. 도농교류 활성화, 농산물 유통비용 절감 차원에서 각광받는 로컬푸드 매장을 201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것도 농협이다. 축산물 유통의 효율성·투명성을 높이고자 2008년 내놓은 ‘안심한우’는 출범 7년 만인 2015년 시장점유율 20%를 돌파하며 한우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들어선 금융 자회사를 연이어 설립, 체질 개선에도 집중했다. 농민 복지 등에 더욱 힘쓰기 위해 금융사업 수익성 고도화에 나선 것이다. 2002년 9월 농협CA투신운용, 2006년 1월엔 세종증권을 인수해 NH투자증권을 세웠다. 2008년 NH농협캐피탈까지 설립하면서 종합금융사의 면모도 갖췄다.
2011년 농협법 개정안 통과에 따른 사업 분할은 농협의 전문성과 경영효율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 2012년 3월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로 나뉘면서 농업경제지주는 농축산물 판매·가공·유통을 책임지게 됐다. 농협금융지주는 NH농협은행·NH투자증권 등 금융 계열사를 둔 국내 5대 금융지주회사로 거듭났다.
농협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이 2018년 발표한 ‘농협의 조합원 실익 및 국민경제 기여도 평가’ 연구에 따르면 농협의 경제·신용·보험·교육지원사업의 총 생산유발금액(2014년 기준)은 77조157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그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5.2%에 달하는 규모다. 취업유발효과는 65만1,600명이었다.
디지털 혁신 박차...ESG 경영에도 적극
계속된 인구 감소로 농촌의 지속가능성에 경고등이 켜지자, 농협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디지털 혁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7월 신설한 디지털혁신부를 최근엔 디지털혁신실로 확대했다. 인력부족 문제는 스마트팜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스마트팜은 인공지능, 무인자동화 기술을 온실·축사에 접목해 생육환경을 관리하는 지능화한 농장이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각 법인이 해온 ESG경영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달 모든 계열사가 참여하는 ‘제1차 범농협ESG추진위원회’도 개최했다. 이 회장은 “농협은 제조, 유통, 금융 등 모든 사업 영역에서 환경을 지키며 사회와 상생 발전하는 녹색 성장에 힘써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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