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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 한마디

입력
2021.08.13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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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가 지도자의 통치 행위는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대통령이 어떤 사안에 대해 언급을 하게 되면 정권 차원의 목표와 의지로 인식되어 이를 관철하기 위해 국가의 행정권력과 여당의 입법권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한 해에 6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쓰는 대한민국 정부가 나아가는 방향도 대통령이 하는 말과 문서에 의해 결정된다.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의 물꼬를 튼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연설,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선포, 북한과 협력 정책의 서막을 연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선언 등은 국가의 진로를 바꾼 상징적인 순간들이었다.

현 정부 들어 전임 정부에서 종결 처리된 사건을 다시 조사하게 한 것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최근 불거진 탈원전 관련 논란도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17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기념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후보 시절 내세운 탈원전 공약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대통령의 말에 당과 정부, 청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무리한(?) 추진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말의 무게가 정작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서 쓰이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내는 경우도 많다. 서민을 위한 말 한마디는 안될까? 무차별적으로 폭증하는 '보이스피싱'으로 불신은 팽배하고 영혼은 질식해 가고, '다단계 금융사기'로 노년을 잃고 자살로 향하는, 이러한 서민의 울부짖음에 대한 메아리는 공허하다. 최근 '마약범죄'까지 판치며 망국의 병인으로 가는(10대까지) 마약에 손을 대는 일까지 급증하고 있다. 회복 불능이며 사회적 부담이 말도 못하게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말 한마디”야말로 절실하다. 결기와 단호함으로, 공권력으로 빛을 낼 텐데.

나아가 긴 호흡이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구조의 변화나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의 표명일지 모른다. 네이버와 카카오로 대표되는 공룡 IT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골목상권을 휘젓고 수많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플랫폼 노동자들이 혼돈의 도가니에서 아우성치는데 대통령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비슷한 행태를 다른 재벌 대기업들이 했다면 모두가 나서 한마디 했을 것이고 뒤이어 검찰과 경찰, 공정위가 칼을 빼들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연금개혁 문제는 어떠한가? 소통 부재를 아쉬워했던 전임 대통령도 정권의 인기엔 도움이 되지 않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연금개혁 문제를 두고 카메라 앞에 섰다.

대통령의 말은 정치적 파장과 무게가 너무 커서 아무리 신중해도 모자라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가져올 정치적 부담에 대한 고려와 국민에 대한 책임 사이의 절묘한 균형감각이다. 말을 너무 하지 않아도 문제고 너무 많이 해도 문제가 되는 자리가 대통령 자리다. 누구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말을, 어떤 수위로,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과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의 인식과 맥락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시대정신이라 해도 좋고 통찰이라 해도 좋을 이러한 균형감각을 갖춘 이가 다음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 지금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기다리며 힘겨운 현실을 묵묵히 버텨내고 있는 수많은 민초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아를 기다려본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ㆍ성균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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