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로 집 잃은 뒤 친지집과 사우나 등 전전
차에선 먹다 만 도시락과 과자 박스 등 발견
8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 노원구 월계동 초안산 인근 길가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남성은 지난해 경매로 집을 잃은 뒤 줄곧 차에서 생활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1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모(57)씨의 차량이 초안산 길가에 처음 나타난 건 1년 전이다. 인근 택시기사들은 차량이 곧 김씨 집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 차량 부근에 종종 정차했던 한 택시기사는 "주변 슈퍼에서 먹을 것을 사다가 차로 가져가는 것을 여러 번 봤다"며 "주차 단속을 하거나 낮에 햇빛이 강하게 들면 다른 장소로 차를 옮겨 대서 잠을 자곤 했다"고 말했다.
구청과 주민센터 등에 따르면 김씨는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다가 지난해 8월쯤 경매로 집을 잃은 뒤 친지 집과 사우나 등을 전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사우나 이용에 제한이 생기자 차량 숙식이 빈번해졌다.
김씨가 숨진 지 이틀이 지났지만, 차량은 최초 발견된 장소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집과도 같았던 낡은 은색 소나타 차량은 통풍을 염두에 둔 듯 창문이 모두 내려가 있었다. 그가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에도 차량 문이 잠기지 않았고 창문이 열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내부에는 깔개와 과자 박스, 휴지 등이 널려 있었다. 왼쪽 뒷바퀴 앞에는 그가 먹다가 놔둔 것으로 보이는 편의점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차량 옆 풀숲에선 김씨가 버린 것으로 보이는 빈 도시락과 물병, 휴지가 여기저기서 보였다.
미혼이었던 김씨는 직계 가족도 없었고, 낡은 차를 빼면 마땅한 재산도 없었다. 만성 간염을 앓아 경제 활동도 제대로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김씨의 친지들이 관할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직원들이 김씨를 찾아 나선 뒤에야 지원이 시작됐다. 관할 주민센터 관계자는 "김씨에게 고시원 거주 지원을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한사코 거절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만 했다"며 "심사가 두세 달 걸리기 때문에 6월과 7월에는 긴급생계비로 47만 원씩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주민센터와 구청은 지난달 말까지 김씨와 연락하며 심사에 필요한 서류를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다음 달 초에는 수급 심사가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심사 기간이 종료되기 전에 김씨는 숨을 거뒀다.
경찰은 타살 정황이 없고 유족 진술과 검시(檢視) 등을 토대로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부검 없이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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