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10일부터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 일정에 돌입한다. 군 관계자는 9일 "내일부터 3박 4일간 국지도발과 위기상황을 가정한 뒤 한미가 공동대응해 전쟁을 막는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오는 16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는 공식 훈련에 앞선 예비훈련으로, 사실상 한미훈련이 시작되는 것이다.
훈련 규모와 인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축소됐던 올 3월 상반기 연합훈련보다 더 줄었다. 북한을 의식했다기보다는 강화된 방역 지침에 따른 결정이라는 게 군측 설명이다.
방역 당국은 최근 군에 △백신 접종자에 한해 훈련 참가 △6㎡당 1명 이내 수용 등의 내용을 담은 지침을 전달했다. 야외실기동 훈련이 아닌 실내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데다 최근 델타 변이 확산과 돌파 감염을 우려해서다. 코로나19 확산 우려와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여권 일부에서 한미훈련 연기 요구가 제기됐지만, 정부는 미국과 협의하에 예정대로 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①네 차례 훈련 중단 땐 美 의중 반영
군 당국이 한미훈련을 실시하는 배경에는 '미국'이라는 상대가 있어서다. 그간 한미훈련은 △1990년 남북 고위급회담과 미국의 걸프전 참전 △1992년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 수용 △2018년 1차 북미회담 △2020년 코로나19 발생 등을 이유로 총 4차례 취소된 전례가 있다. 이러한 결정에는 미국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돌발 결정에 따른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그해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첫 북미정상회담 후 "엄청난 돈을 군사훈련에 쓰고 있다"며 훈련 중단 의사를 밝혔다. 한미동맹이란 의미보다는 훈련에 투입되는 비용을 중시한 것이다. 실제 미국은 실기동훈련에 투입되는 전략자산 전개 비용뿐 아니라 훈련을 위해 한국에 입국하는 수천여 명에 달하는 증원 인력의 이동 및 체류비용을 부담한다. 그러나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②통신선 복원만으로 부족한 명분
남북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정부가 내심 훈련 연기를 기대했더라도 미국을 설득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 남북 통신선 복원은 북한의 일방적 연락채널 단절을 원상복구한 것에 불과하다.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됐던 2018년 상반기에도 양국은 훈련 시기를 2주 연기했으나 정상적으로 실시한 바 있다.
임기 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에 비해 바이든 행정부는 대화를 서두를 이유도 없다. 정상 간 톱다운 방식을 택한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실무 협의를 거치는 보텀업 방식을 선호한다. 대북문제에서 실무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결정에 거리를 두고 있다.
③美 증원 인력 입국... '연기 협의' 시점 지나
한미가 훈련 연기나 취소를 협의할 시점도 이미 지났다. 남북이 통신선 복원을 발표한 지난달 27일엔 미국에서 훈련을 위한 증원 인력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었다. 전 세계 60여개국과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미국은 일정 변경을 위해서는 최소 한 달 전에는 협의를 마무리해야 한다. 2018년 3월 중순 예정된 훈련을 연기했을 당시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전화통화는 훈련 두 달 전인 1월 4일에 이뤄졌다.
일각에선 방역 지침을 이유로 올 3월보다 규모와 인원을 대폭 축소한 것은 정부의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이 많다. 북한과의 대화 동력을 살려나가면서도 훈련 연기가 어려운 현실적 여건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무적 판단이 전혀 안 들어갔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인원 축소가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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