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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가 '신대륙의 선물'이 되기까지

입력
2021.08.1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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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 감자 전도사 앙투안 파르망티에

감자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도 청나라 교역과 유럽 선교사들이 드나들던 19세기 초·중엽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감자꽃. Pixabay 사진

감자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도 청나라 교역과 유럽 선교사들이 드나들던 19세기 초·중엽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감자꽃. Pixabay 사진

채 썬 감자를 튀긴 '프렌치 프라이'가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됐고 그 유래를 두고도 프랑스와 벨기에가 서로 원조라며 다투는 형국이지만, 프랑스대혁명 전까지 유럽과 북미 주민에게 감자는 돼지 사료로나 던져주는 천한 식재료였고, 사람이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는 미신까지 덧씌워진 꺼림칙한 작물이었다.

남미 안데스 원산의 감자는 16세기 중엽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될 무렵에도 낯선 질감과 전분의 끈적이는 점성 때문에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는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유럽 전역에 뿌리를 내렸고, 유럽인들은 그 악착스러움 때문에 더더욱 감자를 천대했다. 프랑스 의회는 1748년 감자 재배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할 정도였다.

오늘날 감자의 인기는 프랑스 출신 약제사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Antoine-Augustin Parmentier, 1737.8.12~1813.12.13)의 덕이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약제사로 7년전쟁(1756~1763)에 참전했다가 프로이센의 포로가 된 그는 포로용 음식으로 처음 감자 맛을 알게 됐다.

귀국 후 연구를 시작한 파르망티에는 감자가 맛도 있고 미신과 달리 몸에도 좋은 구황작물이라는 사실을 확인, 프랑스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 1772년 금지법을 폐지하게 했고, 이듬해 관련 연구로 브장송 아카데미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지는 다른 문제였다. 그는 벤저민 프랭클린, 앙투안 라부아지에 등 당대 명사들을 초대해 직접 만든 감자 요리를 대접하는 공개 시식회도 열고, 감자꽃 부케를 왕과 왕비에게 바치는 이벤트도 열고, 루이 16세의 도움을 받아 무장 경비병이 감자밭을 지키게 하는, 다시 말해 값어치 있는 작물임을 과시하는 '쇼'를 벌이기도 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건 1785년 가뭄과 4년 뒤 프랑스혁명에 이은 기근 사태 이후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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