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못 가는 아쉬움 달래줄
편집자 엄선 세계문학 7편
여름 휴가철 해외 여행길이 막힌 지도 벌써 2년째다. 세계문학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보자. 세계문학전집을 내는 출판사 편집자들이 엄선했다. 올여름 일상에서 해외여행을 만끽할 수 있는 딱 한 권의 세계문학.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발행)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시차도 개의치 않는 독자에게 ‘풍자와 블랙유머로 무장한 휴머니스트’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추천한다. 이 소설은 외계 행성을 다녀온 빌리 필그림이라는 남자의 시간 여행 이야기로, 그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워온 말인 ‘뭐 그런 거지(So it goes)’는 60년대 반문화의 슬로건으로 쓰일 만큼 인상적이다.
김경은 문학동네 해외2팀 부장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우석균 옮김, 민음사 발행)
추억처럼 남는 소설이 있다. 떠올릴 때면 오감이 후드득 깨어나는 소설. 눈이 아리게 푸른 바다, 바다 냄새 머금은 바람, 잔잔한 바람의 시어에 넘실대는 마음.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책장을 펼친 사람을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 바닷가로 데려가는 소설이다. 거기에 오직 노시인, 한 사람을 위한 우체부가 시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삶과 사랑을 뜨겁게 발견하는 이야기라니. 포도주의 달큰한 취기 같은 뭉클함에 마지막 장을 덮고도,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다면 한번 더 읽어도 좋다.
원미선 민음사 편집부 문학3팀 부장
하야시 후미꼬 '방랑기'(이애숙 옮김, 창비 발행)
이번 휴가는 올림픽 열기가 뜨거웠던 도쿄로 가보자. 단,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과 천황을 비웃는 “숙명적 방랑자”이자 “무정부주의자”, 무일푼으로 상경한 후미꼬가 당당히 고개를 쳐들고 먹고살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고투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하게 된다. 당대의 생생한 생활상과 도쿄의 현존하는 실제 장소를 발견하는 재미는 덤이다.
양재화 창비 세계문학팀 팀장
리처드 매시슨 '리처드 매시슨'(최필원 옮김, 현대문학 발행)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도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머리 아픈 당신, 장편소설은 부담스러운 당신에게 원하는 만큼 골라서 읽는 '세계문학 단편선'을 권한다. 열기와 습기로부터 초탈하려면 그중에서도 ‘일상의 공포를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확장시킨 20세기 호러의 아버지’ '리처드 매시슨'이 제격. 무섭지 않으면서 무서운 33편의 이야기에서 호러테이닝의 원조는 중얼거린다, 책장 밖도 안전하지는 않다고.
김현지 현대문학 출판기획부 단행본팀 팀장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발행)
무더운 휴가철엔 더위를 서늘하게 식혀 줄 수 있는 공포 문학 대가의 작품들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인간 내면의 음습한 지하실을 거침없이 탐험하는 작가, 공포라는 감정을 누구보다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독자들을 극한의 긴장으로 몰아가는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와 환상, 미스터리 단편의 걸작들.
박지혜 열린책들 문학팀 대리
마르그리트 뒤라스 '여름밤 열 시 반'(김석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발행)
여름밤은 항상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이 책의 주인공 역시 남편과의 파국을, 남편과 친구 사이의 새로운 사랑을 예감하는 여름밤 속에 있다. 폭풍우가 쏟아지는 한밤, 황금빛 밀밭에 내리쬐는 남국의 태양까지. 어느 쪽을 펼쳐도 이 책은 “어디나 모두 여름이다”. 코로나와 더위로 지친 독자들에게 여름밤의 정서를 만끽하게 해줄 것이다.
홍근철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대리
알랭 로브그리예 '엿보는 자'(최애영 옮김, 을유문화사 발행)
작은 섬마을에 도착한 세일즈맨은 89개의 시계를 하루 만에 다 팔고 떠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배를 놓치고 만다. 다음 날 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한 시간의 알리바이 공백이 있는 세일즈맨은 자신의 무고를 증명해야 한다. 추리 소설 같은 소재와 환상적인 전개, 바닷가의 기묘한 풍경 묘사가 합쳐진 이 걸작은 프랑스 현대문학이 선사하는 최고의 여름 선물이다.
최원호 을유문화사 편집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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