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직확인서 악용' 끊이질 않아
직장내 괴롭힘도 노동자가 입증해야
전문가 "작성권한 노사 양측에 줘야"
전체 직원이 30명인 회사에서 일하던 A씨는 근무 중 다치는 바람에 2주 동안 쉬기로 했다. 산재신청을 안 하는 조건이었다. 막상 휴가에 들어가자 회사는 은근히 눈치를 줬다. 결국 5일 만에 다시 회사를 나왔더니 그보다 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장이 A씨를 부르더니 "몸이 안 좋지 않냐"며 퇴직을 권했다. 단, 정부지원금 때문에 권고사직은 안 된다고 했다. 울컥한 A씨가 권고사직을 거부하고 산재신청까지 하겠다 하자 그제야 "계속 출근해달라"며 황급히 말을 바꿨다.
금융업종 직장인 B씨는 회사 상황이 나빠져 나가게 됐다. B씨는 실업급여를 받으려 회사에다 '경영상 이유로 인한 퇴사'로 고용보험 상실신고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인사팀 직원은 "퇴직금을 포기하면 그렇게 해주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심지어 거짓말이기까지 했다. 회사는 이미 B씨 고용보험 상실사유를 '자발적 퇴사'로 신고한 뒤였다.
직장인에게 실업은 공포 그 자체다. '실업급여'는 그마나 생계 걱정을 조금 덜어주는 버팀목이다. 하지만 일부 회사의 실업급여 농간이 수위를 넘고 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비자발적 퇴사 등 몇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회사만 확인해줄 수 있어서다.
8일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회사의 '이직확인서' 권한 악용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직확인서는 회사를 그만둘 때 쓰는 서류로 실업급여 자격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노동자가 발급을 요청하면 10일 이내 내줘야 한다.
하지만 이직확인서 작성은 회사 마음이다. 직장 내 괴롭힘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자발적 퇴사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괴롭힘을 증명하는 건 노동자 몫이다. 직장갑질119에는 이직확인서에 해고를 자발적 퇴사로 적거나 자발적 퇴사를 할 때까지 괴롭히는 등 다양한 사례가 들어오고 있다.
실제 최근 5년간 거짓 작성 등을 이유로 이직확인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근로복지공단 확인청구 건수는 연평균 2만6,000여 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거짓 작성이 확인돼 과태료가 부과된 건 5%(1,355건)에 불과하다. 괴롭힘 등으로 자진퇴사 후 실업급여를 수급한 비율은 3%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이직확인서 작성 권한을 노사에 균등하게 분배하고 노동자의 괴롭힘 입증책임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직장갑질119 최혜인 노무사는 "회사에만 권한이 있으니 회사는 실업급여제도를 마치 자신이 베푸는 은혜처럼 생각하고 직장 내 괴롭힘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며 "노사 양측에 작성 권한을 부여하고 내용이 일치하지 않으면 입증책임을 사업주가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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