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없이 1인 4시간 통역... 체력 부담 막대
사전 대본 미공유, 외국어 통역에 비해 낮은 보수
경기 중계 통역은 사치... "양질 통역 위한 제도 필요"
도쿄올림픽 개막식 당시 수어 통역사 한 사람이 4시간 가까이 '독박 통역'을 했던 사실이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수어 통역의 특성상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역 화면이 너무 작아 농인에게 방송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고질적 문제도 여전해 개선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교대 없이 한 명이 '무대본 중노동'… 장시간 통역 후 "초주검 상태"
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지난달 23일 국내 지상파 방송3사의 수어 통역사들은 모두 '나홀로 4시간 통역'을 했다. 당시 KBS 수어 통역을 맡았던 조성현 한국수어통역사협회장은 "혼자 4시간을 내리 통역하고 나니 개막식이 끝난 뒤 초주검이 됐고, 질적으로도 완벽한 통역을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유럽농인연맹의 경우 발화자의 몸짓과 표정이 중요한 수어의 특성을 감안해 "수어 통역 시간이 1시간을 초과할 경우 최소 두 명의 통역사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교대 근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 앞으로 다가온 폐막식에서도 SBS와 MBC는 1인 통역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KBS는 개막식과 달리 2인 1조로 45분마다 통역사를 교대키로 했다.
외국어 통역 대비 열악한 처우... 수어 전문성 인식 아직도 제자리
강도 높은 근무에도 수어 통역사들의 처우는 다른 언어 통역사들에 비해 열악하기 그지없다. 조 협회장은 "이번 올림픽에서 수어 통역사들은 5분 미만으로 올림픽 조직위원장 축사를 통역한 영어, 일본어 통역사보다 훨씬 적은 보수를 받는다"며 "아직 모든 금액이 정산되기 전이지만, 협회 조사 결과 방송 3사 모두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해 수어를 하나의 언어로 공인했지만, 수어 통역의 중요성과 전문성에 대한 공감대는 여전히 부족한 탓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정례 브리핑을 맡고 있는 권동호 수어통역사는 “수어 통역을 사회적 약자에 베푸는 시혜적 제도로 인식하기에 예산에 있어서도 인색할 수밖에 없다"며 "무엇보다 수어를 독립된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콩알만한 통역 화면... 양질의 수어 통역 위한 제도 필요
개막식 화면 한 구석을 작게 채운 수어 통역 화면 크기 역시 농인 시청자들에게 고질적인 아쉬움을 남겼다. 현행 방송법에서 정하고 있는 수어 통역 화면 크기는 전체 화면의 16분의 1인데, 수어 소통의 핵심인 통역사의 표정과 몸짓을 정확히 파악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농인연맹이 권장하는 생방송 수어 통역 화면 크기는 전체 화면의 3분의 1이다. 영국 BBC 방송의 경우 수어 통역 화면을 전체 화면의 3분의 1 비율로 배치한 별도 수어 채널을 24시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개·폐막식이 아니면 주요 경기라 하더라도 수어 통역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패럴림픽조차 방송 3사 중 KBS만이 일부 종목에 한해 수어 통역을 제공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는 “농인 시청자들에겐 더 다양한 선택권이 필요하다"며 "방송사가 자발적으로 양질의 수어 통역을 확대할 수 있게끔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등 관련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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