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도개고 박준서 울산공고 권호준 선수?
평균 구속 105㎞ 내외 공으로 강팀 타자들 요리?
야구인들 "뜻밖의 재미와 소소한 감동 주는 선수들"
지역 아마 야구계에 공포의 에이스가 등장했다. 구미 도개고의 좌완 에이스 박준서(3년) 선수와 울산공고의 언더핸드 투수 권호준(3년) 선수다. 언뜻 봐서는 강팀을 벌벌 떨게 만드는 에이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박 선수는 신장 172㎝에 70㎏, 권 선수는 175㎝에 75㎏이다. 운동선수치고는 그리 큰 체격이 아니다. 게다가 두 선수 모두 최고 구속이 110㎞ 근처다. 체인지업은 70㎞를 찍는다. 고교팀이라고 해도 140㎞까지 던지는 선수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만큼 빠른 구속은 절대 아니다. 한 아마 야구 관계자는 "최고 구속 109㎞로 강팀들을 쩔쩔매게 만들기 때문에 ‘공포의 에이스’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라면 "독특한 매력이 있는 선수들이다"고 소개했다.
두 선수가 시속 109㎞의 강속구와 70㎞의 체인지업으로 일구어낸 성과는 놀랍다. 올해 괄목할 만한 성적을 냈다. 도개고의 박 선수는 올해 1승 4패로 35이닝 등판해 135명의 타자를 상대했다. 피안타 49, 4사구 9, 탈삼진 12, 자책점 24, 방어율 6.17을 기록해 팀의 에이스를 꿰찼다.
또 한명의 에이스 울산공고의 권 선수는 올해 3승1패를 기록했다. 37.1이닝 동안 171타자 상대로 피안타 34개, 4사구 29개, 탈삼진 24개, 실점 21, 자책점 16, 평균자책점 3.89을 기록하고 있다.
타자들 "기다리다 지쳐 방망이 휘두르면 어김없이 땅볼"
도개고 박준서 선수는 경상권 AB권 영역에 속한 팀의 투수들 중에서 최고의 구속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1년 사이에 무려 10㎞의 구속을 증가시켰다. 투수들 사이에는 "구속을 5㎞ 늘릴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박 선수는 1년 사이에 무려 10㎞를 늘렸다. 영혼을 두 번이나 판 셈이다. 구속만 놓고 보면 '그 정도쯤이야' 하겠지만 근성만 놓고 보면 결코 만만하게 볼 선수가 아닌 것이다.
109㎞ 강속구와 70㎞대 체인지업으로 강타자들을 돌려세우는 비결은 세 가지다. 다소 드문 좌완 투수에 승부를 할 줄 알고, 볼 컨트롤이 수준급이다. 아마 야구 관계자들은 "구속만 보면 만만해 보이는데 박준서가 등판하면 상태팀 타자들이 속된 말로 환장을 한다"고 말한다.
박 선수를 상대해본 타자들에 따르면 처음 드는 느낌은 "공이 안 온다"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 방망이를 돌리는데 딱, 소리가 나면 여지없이 뜬공이나 땅볼이 된다. 말 그대로 "환장할 노릇"이다. 올해부터는 비장의 무기를 장착했다. 바로 전설의 70㎞ 체인지업이다. 타자들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화장실 한번 다녀와도 될 정도로 느릿하게 날아오는 공"이다. 혹자는 "도대체 어떻게 던지는지 신기할 정도"라고 말한다.
이 두 공으로 강팀을 요리했다. 5월1일 올해 경북의 최강자 포철고와 대구의 강호 대구고가 포항구장에서 주말리그 경기를 펼쳤다. 대다수의 아마 야구 관계자들은 대구고가 우세할 것이라고 짐작하는 분위기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승부가 펼쳐졌다. 결과는 7:6 포철고의 승리였다. 조금은 의외의 결과였으나 '있을 수 없는 경기'는 아니었다. 포철고가 최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강팀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포철고는 최근 10년간 경북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구고를 꺾은 포철고는 큰 산을 넘은 만큼 탄탄대로를 예상했다. 다음 상대는 구미 도개고였다. 바로 다음 날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진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루 전날 145㎞ 전후반대의 공을 던지는 투수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했던 포철 타자들이 평균 구속 105㎞, 체인지업 70㎞에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대부분 땅볼이었다. 결과는 8대1 도개고 승리, 그것도 7회 콜드게임이었다. 박 선수는 이 경기에서 완투승을 거둔 후 ‘마성의 투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박 선수에게도 라이벌이 있다. 울산공고의 권호준 투수다. 그는 "호준이에게는 절대로 지기 싫다"고 말했다.
"커브나 싱커는 잘 안 돼요, 하하!"
울산공고 권호준 선수는 대구 상원고, 대구고, 포철고를 꺾었다. 심지어는 대구고는 울산공고에게 2대1로 패하는 바람에 주말리그 후반기 왕좌의 자리를 내줬다. 대구 경북 대표 강팀 중에 유일하게 그의 마구를 피해간 경북고도 8회까지 패색이 짙었다. 9회에 경기가 뒤집혀 경북고에 승리를 내어 주었지만, 권 선수는 호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울산공고가 '강팀 킬러'라는 닉네임을 얻은 것도 이 경기를 통해서였다.
권 선수는 최고 구속 109㎞에 평균 구속 104㎞다. 변화구로 슬라이더를 던진다. 단 두 가지 구종으로 이런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왜 변화구 구종을 더 늘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커브나 싱커도 해봤는데 잘 안 된다"면서 쑥스럽게 웃는다. 자신의 강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잘 모르겠다. 그냥 타자들이 잘 못 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슬라이더가 어떨 때는 각이 엄청 컸다가 또 어떨 땐 안 됐다가 그래요. 할 때마다 달라요. 정말 '야구 몰라요'예요, 하하!"
"뜻밖의 재미와 소소한 감동 주는 두 선수 활약 기대"
느린 구속 외에 두 선수의 공통점이 있다.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이다. 박 선수는 제주도에서 올라와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다. 권 선수도 "야구만 할 수 있으면 뭐든 다 할 것. 야구 없이는 못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저 개성적인 선수라고 규정하고 넘어가기엔 야구 사랑이 너무 뜨겁다.
두 선수는 분명 아마 야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강팀들에게 뜻밖의 일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한 경기도 허투루 볼 수 없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분명 색다른 시각과 재미로 아마 야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소위 메이저 대회(황금사지기, 봉황대기, 대통령배, 청룡기)와 협회장기 대회 등과 비교해 '마이너리그'인 주말리그를 보는 색다른 맛을 제공하는 선수들이다.
한 아마 야구 지도자는 "190㎝가 넘는 키에 150㎞ 이상의 공을 던지는 재능있는 선수들만 야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아마 야구의 전성기가 올 것"이라면서 "그런 면에서 뜻밖의 재미와 소소한 감동을 주는 두 선수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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