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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안경에도 심는 '5㎜ 변형 카메라'... 활개 치는 불법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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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안경에도 심는 '5㎜ 변형 카메라'... 활개 치는 불법촬영

입력
2021.08.06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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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사, 화재감지기형 카메라 인터넷 구매
제자·동료 상대로 4년간 불법촬영물 제작
10만~20만원이면 손쉽게 주문제작까지
규제 입법 탄력… "사회문화 개선 먼저" 지적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고등학교 교사가 제자와 동료를 상대로 수백 건의 불법촬영물을 제작한 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이 교사가 화재감지기로 위장한 '변형 카메라'를 범행에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상용품처럼 꾸민 외피에 초소형 카메라를 숨기는 형태의 변형 카메라는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고 불법촬영 범죄에 활용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변형 카메라 유통 규제론이 힘을 얻는 가운데, 불법촬영을 부추기는 제도적·문화적 기반부터 손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가 지난 2일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송치한 A 교사는 인터넷에서 변형 카메라를 여러 대 구매한 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 기숙사와 화장실 등에 설치했다. 그가 2018년부터 올해 4월까지 제작한 불법촬영물은 669건, 피해자는 116명으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 직후 서울시가 16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시내 1,360개 학교 화장실을 전수 조사하기로 하고, 피해자의 법률소송 및 심리치료 지원에 나서는 등 파장이 큰 상황이다.

비누에도 카메라 심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번 사건처럼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촬영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수사에 나선 건수는 2017년 6,465건, 2018년 5,926건, 2019년 5,762건으로 최근 3년간 6,000건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변형 카메라를 동원한 범행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설명이다. 발각될 위험이 적고 갈수록 구하기도 쉬워지는 탓이다.

변형카메라 주문제작자와의 대화 내용. 이유지 기자

변형카메라 주문제작자와의 대화 내용. 이유지 기자

한국일보 취재 결과 변형 카메라는 주로 화재감지기, 안경, 액자, 보조배터리 등 일상적인 물건에 초소형 카메라를 내장한 것으로, 인터넷상에서 개당 10만~20만 원에 팔리고 있다.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판매자를 찾아 제작을 요청하자, 판매자는 카메라 사이즈가 5㎜ 정도라며 설치하고 싶은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최대한 정적인 물건을 추천한다"며 미니가습기나 비누 등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구매자 신분이나 용도는 한 차례도 묻지 않았다.

"판매 규제해야" vs "규제 대상 모호"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화재감지기형 카메라'를 검색하면 나오는 제품. 누구라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 캡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화재감지기형 카메라'를 검색하면 나오는 제품. 누구라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 캡처

심각한 불법촬영 범죄가 현실화하면서 변형 카메라의 유통을 규제하자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6월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초소형카메라 판매 금지' 청원은 게시 기간 한 달 동안 23만3,758명이 동의했다.

국회에선 규제 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3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현재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변형 카메라의 제조·수출입·판매·구매대행·소지 등을 관리하는 이력정보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런 규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칫 기술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진선미 의원 법안을 검토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변형 카메라를 웨어러블 카메라 등 다른 융복합기기와 구분하기가 모호하다"는 입장을 냈다. 과기부는 또 "변형 카메라를 직접 제작하거나 해외 직구로 구매할 경우 단속이 어려워 규제 실효성이 낮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촬영 횡행 사회문화부터 바뀌어야"

시각물_불법촬영 범죄 발생 건수

시각물_불법촬영 범죄 발생 건수

전문가들 사이에선 변형 카메라와 같은 도구에 앞서 불법촬영물 생산·유통 시장에 규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불법촬영을 자행하면서 성적 쾌락을 느끼고, 이를 퍼뜨려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암시장이 온존하는 사회문화적 구조가 근본 문제라는 것이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장은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성 신체가 대상화되는 문화와 촬영물로 돈을 벌 수 있는 산업구조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불법촬영 범죄 유형도 다양한 만큼, 변형 카메라 규제 법안으로는 (불법촬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오지혜 기자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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