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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강국'에서 실손보험 청구는 왜 아직도 전산화가 안 됐을까

입력
2021.08.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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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서류 챙기기 힘들어,? 청구 포기 사례 많아
전산화 시도 있었지만, 의료계 등 반대로 무산
국회 관련 법안 5개 계류 중... 연내 처리 가능성도

실손보험. 게티이미지뱅크

실손보험.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가지고 있어 모바일 신분증부터 재난지원금 지급까지 종이 서류 한 장 없이 빠른 처리가 가능하죠. 그러나 실손보험은 여전히 종이 서류가 필수적인 영역으로 꼽힙니다.

병원 진료 후 종이로 된 진료비·약제비 서류를 받아들고 이를 직접 보험사에 제출하는 광경은 사뭇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카카오나 삼성SDS 등 IT 기업들이 앞장서 실손보험금 간편청구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지만, 지난해 말 기준 여전히 전산화된 보험금 청구 건수는 전체의 0.1%에 불과합니다. 왜 유난히 실손보험 영역에서만 IT 기술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보험금 직접 청구 번거로움 때문에"... 청구 포기 사례 多

우리나라 실손보험금 청구 방식인 '상환제'(왼쪽)와 프랑스와 영국의 방식인 '제3자 지불제'. 보험연구원 제공

우리나라 실손보험금 청구 방식인 '상환제'(왼쪽)와 프랑스와 영국의 방식인 '제3자 지불제'. 보험연구원 제공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택하고 있는 실손보험 청구 방식은 '상환제'입니다. 보험 가입자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뒤 진료비를 정산하고, 여기서 받은 종이 서류로 보험사에 보험금을 직접 청구하는 방법이죠.

실손보험은 우리나라 국민의 75%가량이 가입해 있어 사실상 '국민 보험'이라고도 불리는데요. 문제는 비교적 까다롭고 귀찮은 청구 과정 때문에 아예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시민단체가 실손보험 가입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7.2%는 실손보험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유로는 △진료금액이 적어서(51.3%) △보험사 제출 서류를 위해 다시 병원을 방문할 시간이 없어서(46.6%)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아서(23.5%)가 꼽혔습니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의 민영 보험사들은 '제3자 지불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환자는 의료기관을 이용만 하면 되고, 이후 전 과정은 의료기관과 보험사 사이에서만 이뤄집니다. 우리나라의 상환제와 비교해 훨씬 빠르고 간편한 시스템입니다.

원인은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의견 충돌... 국회엔 법안 5개 계류 중

실손보험 전산화를 위한 중계기관 방식의 보험금 청구 전산화 시스템. 보험연구원 제공

실손보험 전산화를 위한 중계기관 방식의 보험금 청구 전산화 시스템. 보험연구원 제공

그동안 실손보험 전산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 절차 개선을 권고한 바 있고, 금융위원회도 2016년 온라인을 통해 간편하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실적은 여전히 저조합니다. 전산화 효용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손보험 청구 건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형 병·의원들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전체 9만 8,000여 곳에 달하는 의료기관 중 청구 전산화에 참여한 의료기관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50곳에 불과했습니다. 사실상 정상적인 서비스가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의료계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꾸준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보험 가입자가 편해지는 만큼 의료기관의 업무가 과중해지는 데다, 민감정보인 환자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커진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올해 5월 진행된 공청회에서 의료계 측은 "보험사가 해야 할 청구 절차 개선 의무를 의료기관에 전가하는 것"이라며 "소비자 편익 증진을 이야기하는 것은 보험사 입장의 정당화 논리"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전산화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습니다. 카카오손해보험과 같은 신생 디지털 보험사가 플랫폼의 힘을 빌려 '보험 청구 간소화'를 추진하면서 보험업계를 긴장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간 최소 4억 장 이상의 청구 서류를 수기로 입력·심사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당연히 화살은 법안 처리를 반대하고 나선 의료계로 향합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전산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데, 의료계에서 수수료 등 이익을 포기하지 못해 10년째 전체적인 사회 효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와 관련한 보험업법 개정안 5개가 계류 중입니다. 대체로 소비자가 의료기관에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 전송을 요청하면,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중개기관을 통해 서류를 전자적 방식으로 보험사에 전송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소비자단체가 적극적으로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고 여야 간 이견이 크지 않아 연내 처리 가능성도 있습니다. 보험업계와 의료계가 사회적 편익을 염두에 두고 합의해 나간다면, 곧 실손보험금 청구도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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