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다" 88올림픽 포스터가 MZ세대에 인기몰이 중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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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다" 88올림픽 포스터가 MZ세대에 인기몰이 중인 까닭은

입력
2021.08.07 13:00
수정
2021.08.0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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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중에 88올림픽 포스터 온라인서 인기
33년 전 포스터 SNS·커뮤니티 등에서 활발히 공유
"30여 년을 앞서 갔다", "지금이라도 갖고 싶어"
디자인 총괄 고 조영제 서울대 미대 교수도 주목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도 덩달아 화제"

포털 카페 등 온라인 공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88올림픽 공식 포스터. 포털 카페 캡처

2020 도쿄올림픽이 한창인 가운데 국내 커뮤니티와 포털 카페 등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 포스터가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국내의 한 포털 카페에는 "지금 봐도 느낌 있는 88올림픽 포스터" "올림픽플에 빠지면 아쉬운 88올림픽 포스터" 등 서울 올림픽의 포스터를 소개하는 게시글이 여럿 올라왔는데요. 서울올림픽 포스터를 소개하는 글은 온라인에도 빠르게 퍼져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7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고, 6만 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습니다.


88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공식 포스터와 준비 상황을 소개하는 1988년 5월 12일 자 한국일보 지면.

무엇보다 누리꾼들은 33년이나 지난 당시 포스터의 디자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시대를 초월했다" "지금 봐도 힙하다" "부모님이 요즘 세대 촌스럽다고 욕할 때 왜인가 했다"고 반응했습니다. 또 30년이 훨씬 넘은 디자인이지만 여전히 세련됐고 요즘 대세인 복고풍(레트로) 감성과도 잘 맞는다는 의견입니다.

굳이 한국 올림픽의 디자인이라는 애국심을 빼고 봐도 감각적이라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누리꾼들은 "집에 하나 걸어두고 싶다" "액자로 만들어서 갖고 싶다" 등 소장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고 "깔끔하고 단정한데 카리스마가 있다" "감각적이고 세련돼 올림픽이랑 어울린다" "우리 고유의 색이나 상징을 부드럽게 잘 표현해 좋다"며 박수를 보냈는데요.


88올림픽 포스터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겼나

88서울올림픽 공식포스터. 커뮤니티 캡처

33년 전 열린 올림픽에 선보였는데도 어떻게 지금 젊은이들의 눈높이에서 봐도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는 포스터가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누리꾼들은 그 배경에도 관심을 보였는데요.

한 커뮤니티 게시글은 당시 포스터를 디자인한 사람이 조영제 서울대 명예교수였으며 성화 봉송 주자의 사진을 찍을 때는 연기가 실내 체육관을 꽉 채워 고생했다는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88서울올림픽의 공식 포스터와 스포츠 포스터는 고(故) 조영제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디자인팀 주도로 만들어졌는데요.

1981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됐지만 조직위원회는 포스터 등 디자인 관련 준비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린 끝에 조영제 교수를 디자인 전문위원장으로 위촉했습니다. 당시 언론 기사를 보면 조 교수는 서울올림픽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결정해 이를 디자인에도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포스터를 디자인한 고 조영제 서울대 교수.

그러면서 1964년 도쿄올림픽과 1972년 뮌헨올림픽을 참고했다고 해요.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고 올림픽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했지만 포스터 안에 담으려는 메시지는 전혀 달랐다는 것이 조 교수의 판단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일장기를 활용해 국가주의적 메시지를 전하려 한 반면, 독일은 인류 보편을 향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갈등을 겪고 있었기에 조 교수는 서울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평화를 전하고자 했고 그렇게 서울올림픽의 콘셉트는 '화합과 진전'으로 정했습니다. 1980년 옛 소련에서 열린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서구 자유 진영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는 공산 진영이 참여를 거부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죠.

1976년 캐나다 몬트리얼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이념을 떠나 전 세계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인 만큼 '화합'은 동서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극복하고 올림픽 정신으로 하나가 되자는 뜻을, ‘전진’은 올림픽을 통해 인류를 위한 보다 나은 발전을 지향하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한 첫 올림픽 포스터

1985년 5월 1일 당시에 첫선을 보인 88올림픽 공식 포스터가 실린 한국일보 지면.

그리고 이는 포스터 디자인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는데요.

당시 조 교수 팀에 따르면, 공식 포스터의 오륜과 밝은 빛은 스포츠를 통해 인류의 '화합'을 추구하는 올림픽 정신을, 성화를 들고 달리는 주자는 행복과 번영을 향한 '전진'을 형상화했습니다.

푸른색과 붉은색 두 가지 시안 중에서는 푸른색을 택했어요. 이는 담청색과 주홍색을 배색해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상징하기 위함이었죠. 더불어 조 교수는 파격적으로 올림픽 포스터 디자인에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디자인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역대 올림픽 공식 포스터를 다 챙겨봤는데 모두 당시 최신의 표현 방법과 기술을 이용했다"며 "컴퓨터 그래픽이 조형 세계에서 크게 대두될 것 같아 이를 채택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또 첨단 공업 국가로 도약해 발전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의지를 그 기술에 담았다고도 했죠.

당시 한국에서는 컴퓨터 그래픽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조 교수는 일본의 디자이너 겐다 에츠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수의 드로잉 시안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가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를 표현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식이었지요. 그렇게 두 나라를 오가며 작업한 끝에 88올림픽 포스터는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최초의 올림픽 포스터가 됐습니다.


88 서울올림픽 핸드볼 포스터. 커뮤니티 캡처

88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각각의 경기 종목을 소개하기 위한 스포츠 포스터 역시 조 교수에게 맡겼습니다.

조 교수는 스포츠 포스터에서도 '화합과 전진'이라는 서울올림픽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포츠 포스터 속 인물을 어느 한 인종이나 국가에 치우치지 않게 하면서도 아시아의 나라에서 개최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동양인을 많이 포함시켰다고 해요. 또한 '화합과 전진'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공산권 선수들도 고루 등장시켰죠.

당시 올림픽 경기 종목 27개(시범 및 전시 종목 포함)를 표현한 스포츠 포스터는 공식 포스터와 마찬가지로 사진과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합성해 만들어져 전국에 90만 장 이상, 해외에 55만 장 이상 배포됐습니다.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도 덩달아 화제"... 일본 디자인의 흔적은 한계

가수 김연자가 어린이 모델과 함께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실은 1988년 한국일보 지면.

한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포스터뿐만 아니라 88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도 재조명됐습니다. 누리꾼들은 "지금까지 나온 하계올림픽 마스코트들"이라는 게시글에 "애국심을 빼고 봐도 호돌이가 하계올림픽 마스코트 중 가장 세련됐다"며 호응했습니다.

당시 호돌이는 특히 실용적 디자인 측면에서도 훌륭하다고 평가받기도 했는데요.

상모의 긴 끈은 '서울'의 영문인 'S'를 비롯해 각종 문자와 숫자, 기호로 바꾸는데 용이했고, 이를 바탕으로 호돌이의 아버지인 김현 디자이너는 70개 이상의 동작을 담은 응용형 캐릭터를 개발하기도 했는데요. 이 중 7종의 민속 주제와 19종의 문자디자인은 한국만이 가지는 독특한 주제여서 호평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호돌이는 우표와 각종 간행물, 기념품 등에 다양하게 활용됐는데요. 특히 그 배지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선수들끼리 배지를 교환하는 문화인 '핀 트레이딩'에도 자주 쓰였습니다.


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의 활용. 국가기록원

88올림픽은 이처럼 한국 디자인 발전의 계기가 됐지만 일부에서는 당시 디자인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했는데요.

일부 누리꾼들은 서울올림픽 공식포스터가 가메쿠라 유사쿠가 디자인한 64도쿄올림픽의 공식 포스터인 '올림픽 성화 주자'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는데요. 성화 주자의 옷차림과 자세, 달리는 방향, 성화봉 및 연기 표현 등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강현주 인하대 디자인융합과 교수는 88올림픽 포스터에 드러난 일본 디자인의 직간접적 영향은 당시 디자인의 한계라고 인정하며 당시 모방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들었는데요. 또한 조 교수가 일본 디자이너인 겐다 에츠오와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홍승주 인턴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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