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림만이 아니다… 올림픽 빛낸 '오리지널 코리안' 재일동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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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림만이 아니다… 올림픽 빛낸 '오리지널 코리안' 재일동포들

입력
2021.08.01 09:30
수정
2021.08.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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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태부터 안창림까지, 한국 유도 알린 재일동포
1986 서울 아시안게임서 개최국 명성도 높여?
태극마크·日 대표 선수 동시 타이틀 쥔 추성훈도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무도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안창림이 아제르바이잔의 오르조브에게 이겨 동메달을 확정 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도쿄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난 오리지널 코리안(Original Korean)이다."

안창림 선수 SNS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27·KH그룹 필룩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안창림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안창림 굿즈'를 판매하고 있는데요. 굿즈에는 영어로 '오리지널 코리안'이 적혀 있습니다. 안창림은 인터뷰에서도 "일본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한국인의 자긍심을 드러냈죠.

드라마틱한 동메달 획득 스토리는 경기를 지켜본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줬죠. 지난달 26일 유도 남자 73㎏급에서 동메달을 딴 뒤 재일동포 3세 출신이란 점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가 주목했습니다. 일본 전국대회를 제패한 장소인 무도관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어올린 것도 인상적이었죠.


도쿄올림픽 남자 유도에서 동메달을 딴 안창림의 홈페이지에서 판매되는 굿즈. 굿즈에는 영어로 '오리지널 코리안'이라고 적혀 있다. 안창림 닷컴 캡처

안창림은 유도 경기 때마다 재일동포들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유도도 자신보다 재일동포들을 위해 뛴다고 할 정도인데요. 안창림이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만든 굿즈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안창림이 중학생 때 노트에 적은 메모의 일부분이라고 합니다.


내가 지면 가족이 운다. 할아버지를 떠올리자. (교토조선)제1학교 동급생, 동포가 응원한다는 걸 잊지마. 유도는 전투다. 지면 죽음을 의미하고, 이기는 건 산다는 걸 의미한다. (중략) 사람에게 약점과 약함을 보이지 말자. 유도복은 나 자신의 거울이다. 센스가 없다면 세 배 더 노력하자.

안창림이 중학생 때 노트에 적은 메모 일부

안창림은 이 메모를 포스터로 제작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는데요. '뭐가 됐든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라고 말이죠. 일본에서 소수자로서 차별과 핍박을 견뎌야 하는 재일동포들을 대신해 싸운다는 그의 남다른 각오를 알 것 같습니다.

안창림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해 2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체육회와 유도회, 기업가와 부모님의 지인들까지 재일동포 사회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다"며 "동포 사회가 어려웠던 걸 알아달라기보다 날 통해 문화나 역사를 이해해 주는 분들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日언론, 올림픽 앞두고 "김지수를 주목하라"

대한민국 유도 김지수가 지난달 26일 오전 일본 도쿄 지요다구 무도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57kg 유도 여자 16강전 경기에서 프랑스 사라레오니 시지크에게 패배한 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도쿄=뉴스1

재일동포를 대표해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는 김지수(21·경북체육회)도 있습니다. 김지수는 26일 유도 여자 57㎏에 출전했지만, 아쉽게도 16강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온 김지수는 '부모님'이란 말에 눈물을 쏟으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는데요. 그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응원해주신 분이 많은데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김지수는 안창림과 같은 재일동포 3세 출신으로, 일본이 탐내는 재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전국 우승을 차지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7년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언론은 "주목할 만한 선수"라며 김지수의 활약상을 기대할 정도였습니다.


1964 도쿄올림픽서 한국 유도 첫 번째 메달 딴 김의태

1964년 10월 25일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80㎏에서 동메달을 딴 김의태 선수가 시상식이 끝난 뒤 어머니에게 동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재일동포들은 올림픽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60여 년 전부터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며 한국의 메달 사냥에 큰 도움을 줬죠.

그동안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을 뛴 선수들은 유독 유도에서 많았는데요. 유도의 종주국이 일본이고, 어렸을 때부터 훈련해 강점을 보이기 때문이죠. 유도에서 메달을 딴 재일동포 메달리스트는 김의태가 처음입니다. 메달을 딴 장소 역시 일본 도쿄였습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응답하라 1964 도쿄'란 글을 실었는데요. 당시 우리나라는 은메달 두 개, 동메달 한 개로 종합 순위 26위를 차지했습니다. 복싱 남자 밴텀급의 정신조, 레슬링 남자 자유형 플라이급의 장창선이 은메달을, 유도 남자 80㎏에서 김의태가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유도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만든 재일동포 선수들

1972년 9월 뮌헨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유일한 메달을 안긴 오승립(오른쪽)의 경기 모습. 남자 유도 80㎏ 결승전에서 일본 선수 세키네 시노부와 대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8년 뒤 1972 뮌헨올림픽에서 한국은 저조한 성적을 거뒀는데, 재일동포 선수들 덕분에 그나마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39명이 출전해 은메달 한 개를 따는 데 그쳤습니다.

시기상 북한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게 중요했던 만큼 선수들의 노력과 상관없이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죠. 북한은 이때 금메달 한 개, 은메달 한 개, 동메달 세 개를 땄습니다.

한국 선수단에 유일한 메달을 안긴 건 재일동포 유도 선수인 오승립입니다. 오승립은 유도 남자 80㎏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며 대한민국의 유일한 메달리스트가 됐습니다.

오승립은 8강에서 일본선수권 우승자인 세키네 시노부를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는데, 금메달 결정전에서 세키네와 다시 맞붙었어요. 오승립은 세키네와의 결승에서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막판 30초를 남기고 실점해 금메달에는 실패했습니다.

당시 유도 올림픽 경기 운영은 독특했는데요. 패자부활전에서 승리를 차례로 거두면 결승전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최대 동메달까지 딸 수 있는 지금과는 경기 방식이 달랐죠.

그런데 당시 '오승립이 일본을 위해 일부러 졌다'는 황당한 주장이 나오며 비판을 받았는데요. 오승립은 "지고 싶어서 지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발끈하며 섭섭함을 드러냈죠. 당시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1976년 8월 2일 몬트리올올림픽 남자 유도 80㎏ 경기를 펼치고 있는 박영철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처럼 유도가 올림픽 효자 종목이 될 수 있었던 건 재일동포 출신들의 활약이 컸기 때문인데요. 한국 유도의 첫 번째 메달을 안긴 김의태는 12년 뒤 유도 대표팀 감독을 맡아 한국 유도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김의태가 이끈 대표팀은 1976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확보하는데요. 이때 한국에 메달을 안긴 선수 역시 재일동포 출신의 박영철이었습니다. 박영철은 당시 4년 전 오승립이 메달을 딴 80㎏급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재일동포 유도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한국골프 개척하고 하키 세계 최강 누른 재일동포 선수들

재일본대한체육회가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2019년 3월 31일 일본 도쿄 데이코쿠호텔에서 연 창립 65주년 기념 행사로, 올림픽 출전이 유력시되는 재일동포 선수들에게 장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재일본대한체육회 홈페이지 캡처

재일동포 선수들의 활약은 유도에서만 나온 게 아닙니다.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기 전 재일동포 선수들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메달을 안긴 주역이었죠. 박세리 열풍이 불기 전인 1980년대 한국은 골프 불모지나 다름없었는데, 팀 구성부터 경기 운영까지 재일동포 출신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건 1982 뉴델리 대회 때부터인데요. 당시 우리나라는 1986 서울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상황이라 전 종목에 걸쳐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절박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선수층이 두텁지 않아 대표팀을 꾸리기 힘들 정도였죠.

결국 대부분 해외파로 팀을 꾸렸고, 재일동포 김기섭·김주헌과 재미동포 김병훈, 아마추어 김성호가 합류해 가까스로 팀을 구성합니다. 한국은 뉴델리대회 단체전 에서 은메달을 땄고, 멤버 그대로 4년 뒤 서울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하키도 골프와 비슷했는데요. 한국 남자 하키팀은 1986 서울아시안게임에서 하키 세계 최강국인 파키스탄을 누르고 금메달을 땁니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재일동포 출신인 한종렬입니다. 한종렬은 파키스탄과의 결승전에서 동점 골과 결승 골을 잇따라 성공시켰죠.


태극마크 위해 불이익과 차별 맞서 싸운 추성훈

한국일보 2001년 4월 16일자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아시아유도선수권 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딴 추성훈을 다룬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편견의 벽을 뛰어넘은 재일동포 선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재일동포 4세 추성훈을 꼽을 수 있는데요. 추성훈은 한국 유도계를 꽉 쥐고 있는 특정 대학의 학맥과 재일동포 출신에 대한 차별에 좌절하며 결국 일본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추성훈이 처음부터 일본 대표 선수를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태극마크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였는데요. 추성훈은 안창림, 김지수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귀화시키려고 했던 유도 스타였죠.

추성훈은 일본의 설득을 뿌리치고 태극마크의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차별과 편견, 판정 불이익에 지친 추성훈은 2001년 초 일본 귀화 의사를 밝혔지만, 다시 한번 태극마크에 도전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추성훈은 노력 끝에 2001년 4월 몽골에서 열린 아시아유도선수권 남자 81㎏급에서 한국 국가대표 자격으로 첫 금메달을 따게 됩니다.


부산아시안게임이 펼쳐진 2002년 9월 30일 일본에 귀화해 유도 일본 대표로 출전한 아키야마 요시히로(추성훈)를 응원하는 현수막이 부산 구덕체육관 유도 경기장에 걸려 있다. 오대근 기자

그러나 추성훈은 그해 9월 일본으로 귀화했고, 일본 유도 대표 선수가 됩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모두 대표선수로 선발된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됐죠.

추성훈에 앞서 일본에서 이름을 떨친 재일동포 체육인은 프로레슬러의 전설인 역도산(본명 김신락)과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인 최배달(최영의)이 있습니다. 이들의 인생 스토리는 영화 '역도산'과 '바람의 파이터'로 알려지기도 했죠.

류호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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