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 포함 고위 관료 최소 24명 해임
검찰의 정당 反부패 수사 "정치수사 우려"
경제난 지친 시민들, 대통령 응원도 많아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을 촉발했던 튀니지가 사법부 독립까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의회 기능을 정지시킨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이 이번엔 사법당국의 고위 관리들을 대거 축출하고 나섰다.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눠 정부를 운영(이원집정부제)하고 있으나, 총리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앞세워 총리를 밀어내고 모든 권한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다. 아랍의 봄 이후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했던 튀니지가 10년 만에 독재정치로 돌아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 등에 따르면 사이에드 대통령이 의회 기능을 정지시키고 통행금지령까지 선포한 후 사흘간 최소 24명의 관료들이 해임됐다. 이들 중에는 임시 법무장관과 군사법원 수석검사, 판사 등도 포함됐다. 연이은 해임의 명분은 반(反)정부 시위에 나선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개혁이지만 사실상 삼권분립을 허물고 있다. 여기에 튀니지 국영 텔레비전의 수장이 이날 교체돼 언론자유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혼란 속에 집권당인 엔나흐다를 포함한 3개 정당에 대한 검찰의 반(反)부패 수사 착수 소식도 전해졌다. 외국 자금·익명 기부 등 불법 정치자금 의혹이 수사 대상이다. 당국은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수사가 시작됐다고 해명했으나 정치적 수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리카르도 파비아니 국제위기그룹(ICG) 북아프리카사업본부장은 블룸버그통신에서 "부패와의 싸움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내걸었던 대통령이 검찰을 장악했고, 이 수사는 반부패 운동의 시작 신호"라면서도 "사이에드 대통령이 정적들을 내치는 정치적 수사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튀니지에서는 사이에드의 움직임을 '쿠데타'로 규정해 비판하는 여론만큼 그를 응원하는 상반된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제난에 지친 이들이 총리와 그의 소속 정당(엔나흐다)에 갖는 반감이 상당하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다. 대통령의 강압적 리더십을 개혁의 희망으로 읽은 것이다. 민주화 이후 튀니지 정부는 독재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외채를 갚는 데 급급했고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덮쳐 경제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심각한 경제 문제를 고치지 못했다"며 "국제사회가 '아랍의 봄' 성공 사례인 튀니지를 지켜나가려면 경제·사법 개혁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 반응은 온도차가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사이에드 대통령에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총리 임명과 의회 복구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오스만 제란디 튀니지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튀니지 민주주의 기관들이 정상적 기능으로 신속하게 복귀하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며 의회 정상화 등을 압박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인근 아랍 정부 대부분은 사이에드를 향한 논평은 자제하는 편이다. 다만 튀니지 국민에 대한 지지 의사 정도만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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