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리터 물통 나르던 가난한 역도선수, 필리핀의 영웅으로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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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리터 물통 나르던 가난한 역도선수, 필리핀의 영웅으로 '번쩍'

입력
2021.07.28 16:30
수정
2021.07.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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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첫 금메달 안긴 역도선수 디아스
"눈물 터져 나왔다" "정말 자랑스럽다"
SNS 찬사 이어져... 국민 영웅으로 떠올라

필리핀 프리뷰 캡처

필리핀에 올림픽 참가 97년 만의 첫 금메달을 안긴 역도선수 하이딜린 디아스(30)에게 필리핀 국민이 열광하고 있다. 물통을 짊어지고 다닐 정도로 어려웠던 가정 형편에다 정치적 탄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온갖 역경을 이겨낸 성공 신화에 힘입어 그는 '필리핀의 희망'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 거주 중인 필리핀 사람들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 회사를 다니는 노린 조이스(30)씨는 2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에 있는 나는 한국 방송 채널로, 필리핀의 엄마는 필리핀 방송국 중계로 동시에 경기를 지켜보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며 "금메달 딴 장면과 사진을 한국에 있는 필리핀 지인들과 서로 공유하고 기쁨을 나눴다"고 전했다.

이어 "평소 스포츠 경기를 많이 보지 않지만 디아스는 필리핀에서도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경기를 꼭 챙겨 보자는 분위기였다"며 "특히 결승전에서 중국 선수와 아슬아슬한 경쟁을 펼치다 1kg 차이로 이겼기 때문에 흥분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12년 동안 거주하다 지난해 10월 본국으로 돌아간 필리핀인 리고베르토 반타씨는 2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1924년 필리핀이 올림픽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나서 97년 만에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전 국민이 기뻐하고 있다"며 "다만 모여서 축제하는 건 아니고, SNS를 통해 기쁨을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시상식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눈물 흘렸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코로나19로) 봉쇄령이나 야간통행 금지로 TV에서 시상식을 보다 대부분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필리핀 매체(www.preview.ph)에 따르면 유명 모델인 이사벨 다자는 "바벨을 내려놓을 때 당신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며 감격했고, 2015 미스 유니버스에서 1위에 오른 피아 워츠바흐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찬사를 보냈다.

필리핀 유명 연예인들도 "우리 조국에 희망의 상징"(야시 프레스먼), "대통령 국정연설(SONA)에 영웅인 디아즈 당신이 필요하다"(레히네 벨라스케스)고 경의를 표했다.


국내 거주 필리핀인들이 금메달을 딴 하이딜린 디아스 선수의 활약을 공유한 사진. 노린 조이스씨 제공

반타씨는 "시상식 후 '우리 필리핀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소감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감동을 받고 있다"며 "디아스 선수가 국가 영웅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40㎏ 물통 나르다 역도 시작....어려운 형편에 직업 군인 선택"

필리핀의 하이딜린 디아스가 대나무 막대에 물통 2개를 달아 만든 역기로 훈련하고 있다. 하이딜린 디아스 SNS 캡처

가난한 집안에서 육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11세 때 정식으로 역도를 시작한 디아스는 온갖 역경을 이겨냈다. 어릴 적 40리터(40㎏)쯤 되는 무거운 물통을 들고 하루 수백 미터씩 걸어 다녔던 이야기가 특히 관심을 모았다.

반타씨는 "디아스 선수가 가난했기 때문에 직업 군인을 선택했다고 알려졌다"며 "가족이 마실 수 있는 식수를 들고 수백 미터를 걸을 정도로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그 물통을 가볍게 들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사촌언니들과 동생들이 역도를 하는 걸 보고 역도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본인이 가장 역할을 해야 돼 대회에서 받는 보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지 못했다고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올림픽 도전도 쉽지 않았다. 17세에 처음 출전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2014년 무릎 부상이 찾아왔다. 그는 체급을 바꿔 출전한 2016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이번에 금메달을 따기까지 과정도 험난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자국 내 훈련이 여의치 않아 이웃 말레이시아로 전지 훈련을 갔지만, 그곳 역시 코로나19로 체육관이 문을 닫아 결국 집에서 대나무 막대 양쪽 끝에 물통을 매달아 역기처럼 들어올리며 연습했다. 이 장면은 그의 SNS에도 올라와 있다.


"한때 정부 블랙리스트에 올라 후원받기 어려워"

26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55㎏급 A그룹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필리핀의 하이딜린 디아스(30)가 시상대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 그는 이날 경기에서 인상 97㎏, 용상 127㎏으로 합계 224㎏을 들어올려 금메달을 확정했다. 필리핀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1924년 이후 무려 97년 만이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반타씨는 "선수들이 항상 국가 차원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디아스 선수도 그런 어려움을 기억했다"며 "그래서 본인이 직접 대기업과 후원자 등을 찾아 다니며 금전적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특히 "정치적 견제로 일부 시민들의 비판 대상이 돼, 금전적 지원을 받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훈련으로 이겨 내서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고 강조했다.

다만 디아스 선수가 두테르테 대통령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것은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반타씨는 "SNS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이 디아스 선수의 팬이기도 해서 연결됐다고 하던데, 디아스 선수 본인이 '연결된 사람(팔로워)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면서 "그런데도 아직 디아스 선수가 현 정부에 비판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필리핀 정부와 기업은 금메달을 획득한 디아스에게 3,300만 페소(약 7억5,000만 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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