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동원, 계약서도 안 쓰고 '시세 띄우기'
국토부, 의심 거래 수사 의뢰하기로
미등기 사례 2,420건 중 더 있을 수도
#1. 지난해 6월 부동산 중개사 A씨는 시세 2억4,000만 원인 처제의 아파트를 딸 명의로 3억1,500만 원에 매수 신고한 후 3개월이 지나 신고를 해제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아들 명의로 3억5,000만 원에 다시 매수 신고를 했다. 한 달이 지나 A씨는 이 아파트를 제3자에게 3억5,000만 원에 매매 중개하고 곧바로 아들의 종전 거래를 해제 신고했다. 처제는 6개월 만에 1억1,000만 원의 이득을 얻었다.
#2. B 분양대행회사는 지난해 7월 회사 소유의 시세 2억2,800만 원짜리 아파트 두 채를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명의로 각각 3억400만 원, 2억9,900만 원에 신고가 신고를 했다. 계약서와 계약금이 오가지 않은 허위 매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B 사는 제3자 두 명에게 해당 아파트들을 시세보다 6,500만 원 비싼 가격에 팔아 넘기고 종전 거래는 즉시 해제 신고했다. 총 1억3,000만 원의 차익을 얻은 셈이다.
국토교통부가 22일 발표한 자전거래 및 허위신고로 추정되는 거래 12건에 포함된 사례다. 시세 조종이 목적인 '실거래가 띄우기'가 정부 조사를 통해 드러난 건 처음이다. 무주택자들은 내 집 마련을 위해 '영끌'까지 하며 애를 태우지만 한쪽에선 조직적으로 집값을 올려 이들을 등치는 세력이 존재하다는 게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국토부는 기한 내 소유권이전등기 신청을 하지 않아 의심스러운 거래 2,420건을 파악해 세부 내용을 들여다볼 계획이라 시세 조종 사례가 더 적발될 가능성도 있다.
미등기 사례 2,420건, 법령 위반 의심사례 69건 적발
국토부에 따르면 소유권이전등기 신청을 하지 않은 2,420건은 계약해제 시 해제신고가 의무화된 지난해 2월 21일부터 9개월간 이뤄진 아파트 거래(71만여 건) 등기부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들 거래는 △허위로 거래 신고를 했거나 △계약해제 후 해제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정상거래 후 등기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며 "모두 과태료 처분 대상"이라고 말했다. 2,420건 각각의 구체적 사유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아울러 지난해 2월 21일부터 1년간 이뤄진 아파트 거래 중 규제지역 내 특정인의 반복 계약해제(821건)를 집중 조사한 결과 69건의 법령 위반 의심 사례도 포착됐다. 올해 2월 국토부가 신고가로 부동산 거래 계약을 신고한 후 재신고 없이 해제한 3,700건에 대해 자전거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지 5개월 만이다.
조사로 밝혀진 자전거래 및 허위신고 의심 사례(12건) 중에서는 중개사나 중개보조원 등 부동산 중개 주체들이 시세 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8건)도 있었다. A씨 이외에 중개보조원 C씨는 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신고가 매수 신고를 한 후 제3자에게 시세보다 2,950만 원 높은 가격에 중개한 후 신고를 해제했다.
공인중개사가 부당이익을 얻거나 제3자에게 부당한 이익을 얻게 할 목적으로 거래가 완료된 것처럼 꾸미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부 "자전거래가 해당 부동산 시장 교란...엄정 조치할 것"
국토부는 이 같은 거래들이 인근 단지의 시세 상승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엄정 대처할 방침이다. 조사 결과, 경기 남양주시의 한 단지는 자전거래 이후 현재까지 28건 거래에서 약 17% 상승한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충북 청주시의 한 단지의 경우 6건의 거래에서 54% 오른 금액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김수상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기획조사를 통해 실거래가 띄우기 사례를 최초로 적발하는 성과가 있었다"며 "적발된 법령 위반 의심사례 69건은 경찰청, 국세청, 관할 지자체 등에 통보해 수사 의뢰, 탈세혐의 분석, 과태료 부과 등을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동산 불안 주원인으로 확대 해석은 안 돼"
다만 이번에 적발된 일부 거래의 영향을 과장해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약 80만 건의 거래 중 법령위반 의심사례는 69건으로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며 "이들을 주택가격상승과 전세난 등을 초래한 '주원인'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공인중개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자전거래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운 한계도 존재한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형사처벌 대상이 중개사로 한정돼 규제 망을 피한 자전거래가 양산될 우려가 있다"며 "부동산거래분석기획단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고 관계 법령을 개정하는 등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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