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 정치평론가에게 정의당의 현재와 미래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정의당이 마주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장혜영, 류호정 등 개별 의원들의 활약이 정의당의 존재감 상승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있다.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심상정 의원과 이정미 전 의원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도 아직은 크지 않다. 지난달 비슷한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과 연대하겠다며 '진보 빅텐트' 구상을 밝혔지만, 큰 울림은 없다.
23일은 노회찬 전 대표 서거 3주기다. "당은 앞으로 나아가라." 노 전 대표의 유언이다. 내년 대선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 정의당이 나아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대선, '새 얼굴'로 치르기 어렵다
정의당은 9월 중순 당내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하고, 10월 중순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정의당 독자 후보를 내되, 다른 정당·단체와 연대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진성 진보 정권 창출을 주도할 대선후보군은 '예상 범위'에 있다. 이정미 전 의원이 '외로움 없는 따뜻한 돌봄사회 포럼'을 발족하는 것으로 대권 행보를 시작했고, 심상정 의원 등판도 머지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미풍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이달 16, 17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심 의원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1.2%에 그쳤다. 두 사람이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정치권의 세대교체 흐름과 맞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새 얼굴'이 나올 만한 상황도 아니다. 장혜영, 류호정 의원은 40세 이상만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한 헌법 규정 때문에 대선주자로 뛸 수 없다. 심상정 의원도 지난달 "장강의 앞 물을 뒷물로 세게 밀어내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지만, 그게 안 돼서 너무 걱정"이라고 말했다.
◇'왜 정의당인가'... 모호해진 명분
더 큰 문제는 정의당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는 데 있다. '민주당 2중대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대안적 진보정당'으로서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정부·여당을 향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긴 하지만, 타격감이 크지 않다. 한 정치권 인사는 "'왜 정의당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을 표방하고도 노동 분야 의제 선점 기능이 약해졌다는 평가는 특히 뼈아프다. 최근 정의당의 혁혁한 성과로 꼽히는 건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정도다. 류호정 의원이 '패션 정치'로 노동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앞장서고 있지만, '개인의 활동'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강하다.
윤태곤 '전략과 의제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류 의원이 민주노총 소속 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부장 출신이기는 하지만, 노동운동 상징성이 과거 거물급 인사들에 비해 약하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당 지지율 3~5%... "대선 흥행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지지율은 줄곧 3~5%에 머무르고 있다. 물론 정의당 위기를 정의당이 온전히 초래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21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선거법 연대'를 사실상 파기하고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는 꼼수를 쓴 것의 여파가 크다. 정의당은 총선에서 고작 6석을 지켰고, 이는 발언권의 급격한 약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김종철 체제가 들어서면서 부활의 기운이 감돌았지만, 김 전 대표의 성추문으로 더 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1대 1 경쟁이 가열되면서 정의당이 설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함께 꿈꾸던 미래, 차별 없는 세상"(노회찬 전 대표)에 끝내 당도하기 위해 정의당은 절치부심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대선 흥행'부터 잡겠다고 포부를 다지는 중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토론 배틀'과 같은 참신한 방식을 도입해서라도 당내에서 세게 경쟁해야 정의당의 주목도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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