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총여)가 조만간 사라진다. 그나마 총여 간판이 남아 있어 명맥만은 유지하던 곳인데 자취를 감추게 됐다. 경희대 이외 이제 서울지역에 총여 조직이 남아 있는 곳은 한양대, 총신대, 감리신학대, 한신대 정도지만, 몇 년째 회장이 없어 유령조직에 가깝다. 이들까지 사라지면 총여의 종말, 총여의 소멸이다.
예전처럼 여대생이 귀한 시절은 아니다. 요즘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다. 소수자 시절 만들어졌던 총여가 이제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여성계에선 총여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우느냐는 고민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대를 중심으로 젠더 이슈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학내 기구는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경희대 등 5개 대학 ... 곧 떨어질 '총여'의 마지막 잎새
23일 경희대에 따르면 경희대 총여의 운명은 8월 초 결정된다. 지금 분위기론 폐지가 유력하다. 남은 건 해산 결의냐, 투표를 통한 폐지냐 등 폐지의 방식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서울 지역 다른 대학의 총여도 비슷한 신세다. 여성의 대학 진학이 높아지면서 필요성이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이는 단순히 서울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거의 다 사라졌고, 있다 해도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대학가, 여성계에서 "전국적으로 총여가 남아 있는 대학은 포항공대가 유일하다"는 말이 나온다. 포항공대는 대학 특성상 여학생의 숫자가 2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총여 대체할 기구들은 있다지만
총여가 사라졌다고 여대생 문제를 다룰 창구가 사라진 건 아니다. 주요 대학은 대학이나 총학생회 산하에 성평등위원회, 인권위원회 등의 기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안 기구로는 부족하다는 게 여성계의 주장이다.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의 원정 활동가는 "이미 충분히 성평등하다는 식의 인식이 강한 곳은 그런 기구가 생겨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며 "위원회 활동을 하면 사퇴나 파면 요구 등 여러 방면으로 간섭이나 압박이 들어오기 때문에 성차별 피해 학생 등이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자치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내 젠더갈등도 여전하다. 코로나19 때문에 등교수업이 드물다 보니 지금은 전장이 단체카톡방이나 에브리타임(학내 익명 커뮤니티·에타) 등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최근 동국대 에타에는 한 연예인이 '예쁜 여자 음해하는 여자들 다 못생겼어'라고 말한 사진 캡처와 함께 '최근 가장 공감된다'는 글이 올라왔고, '페미는 예쁜 여자 연예인 골라서 깐다'는 댓글이 달렸다. 성균관대에선 페미니스트 재학생에게 욕설과 모욕적 표현이 이어졌다. 포항공대 총여가 4월 하예나 DSO(디지털성폭력아웃) 전 대표를 초청해 열려 했던 강연은 일부 남학생들의 '남혐 반대' 항의에 밀려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총여나 대체 기구에 성별 이분법적 시각을 대입해선 젠더갈등만 더 키울 것이라고 경계한다. 그보단 대학 학생회 역할, 다뤄야 할 의제, 논의 방식 등을 이 시대에 맞게 다시 정의할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화 투쟁을 하고 사회 개혁 운동을 하던 총학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이제 교육 커리큘럼, 학생 복지 문제를 다룬다"며 "남녀를 구분하는 고루한 패러다임부터 버리고 총학 내 권한이 확보된 기구에서 남녀가 함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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