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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무관중 공포

입력
2021.07.2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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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6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상벌위원회 개최 안내문. 뉴스1

16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상벌위원회 개최 안내문. 뉴스1

승부 조작이 프로야구를 강타한 2012년 LG 박현준을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만났다. 박현준은 "나는 절대 아니다"라고 펄쩍 뛰었다. 당시 LG 구단 단장조차 "선수 면담을 했는데 도저히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억울한 표정"이라고 했다. 박현준은 그다음 날 귀국해 검찰 조사에서 혐의 사실을 인정했다.

2015년 원정 도박에 연루된 삼성 선수들도 그랬고, 지난해 승부 조작 의혹을 부인했던 윤성환도 최근 공판에서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의혹이 불거졌을 때 일단 '아니다'라고 우기고 보는 게 몹쓸 관행이 됐다. 인정하는 순간부터 마주할 현실을 당장은 모면하고 싶은 마음까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세상은 변했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팬들은 때로는 기자들보다 먼저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루머의 실체와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뜸을 들이거나 은폐ㆍ축소의 냄새가 나면 혹독한 가중 처벌만 뒤따를 뿐이다.

이번에도 NC 선수들이 호텔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소문은 일찌감치 나돌았다. 구단은 사실을 파악했지만 "방역 당국의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진실의 입을 닫았다. 확진자 미공개 원칙에 기대어 부도덕한 사생활까지 감추려 한 불순한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박석민의 알맹이 빠진 사과문과 해명은 역학 조사를 담당한 강남구청의 반박으로 군색해졌다. 알고 보니 방역 수칙을 위반한 사례는 더 있었다. 한화 2명, 키움 2명 등 총 4명도 외부인 3명과 술자리를 가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NC 사태가 터진 뒤에야 자진 신고를 하면서 서로 만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거짓말은 곧바로 탄로가 났다. 역학 조사 결과 '6분' 동안 동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리그 전체가 거짓말과 축소로 일관한 점이 화를 키웠다. 구단들도 숨죽이고 있다가 역학 조사가 강화되자 그제야 소속 선수 연루 사실을 공개하는 등 선수들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의 말만 믿고 '과보호'로 인한 섣부른 판단으로 혼란만 일으켰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직전 NC 구단이 올린 구단 유튜브를 다시 보니 실소가 절로 나온다. 영상 속에서 원정 숙소 일과를 묻자 박석민은 "자야죠"라고 답했다. 박민우는 "책 봐요" 권희동은 "밤 10시에 도착하는데" 이명기는 "코로나도 있고"라고 약속이나 한 듯 말했다. 이들이 호텔에서 여성 2명과 술판을 벌인 건 영상을 찍은 직후다.

'호텔 술판'은 대만 언론에까지 소개돼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두산 구단 일부 선수들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야유회를 나온 듯한 가족 동반 훈련으로 구설에 올랐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K방역의 자부심을 내세우고, KBO리그의 대응 매뉴얼을 타국 리그가 참고했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NC에 이어 두산 선수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동안 방역으로 고생했는데 참 안타깝다는 심정이 앞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프로야구 선수들만 비켜가는 것도 아니니까. 분통이 터지는 건 치맥, 육성 금지 규정을 지켜가며 땡볕에서 응원했던 선수들에게 느낀 배신감이다. 도쿄올림픽이 끝나면 거리 두기와 상관없는 '무관중' 공포가 벌써 다가온다.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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