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홍수에 미국은 폭염·산불… 기상이변 속출
"기후변화 안전지대 없어, 부국도 적응 준비해야"
사상 최악의 기후재난이 ‘경제 대국’들을 집중적으로 강타하고 있다. 서유럽을 휩쓴 물폭탄과 미국 12개 주(州)를 초토화시킨 초대형 산불, 여름에도 서늘한 북미 서부 지역에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염은 어쩌면 지구가 인류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 기후재난을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이제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기후변화 앞에선 빈국과 부국의 구분도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17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마저 심화하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신문은 그러면서 “유럽과 북미를 강타한 극단적 기후재난은 전 세계가 기후변화를 늦출 준비도, 기후변화 속에 살 준비도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일깨웠다”고 지적했다.
냉정히 말해 이번 사태는 ‘자업자득’의 결과다. 부국들은 100년 이상 화석연료를 이용해 경제 성장을 이뤘고 온실가스를 무더기로 배출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지구온난화 피해의 희생양은 주로 사회기반시설이 취약한 저개발 국가들이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프리데리케 오토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선진국 국민들에겐 날씨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서유럽 홍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가 유럽 제일의 경제 대국인 독일이란 사실은, 선진국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17일까지 독일에서 폭우로 인해 숨진 사람은 156명으로 늘었다. 여전히 많은 주민이 실종 상태라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벨기에에서도 이날까지 시신 27구를 수습했고, 네덜란드와 스위스,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에서도 홍수 피해가 속출했다. 유럽 전역에서 희생자는 어느새 180명을 넘어섰다.
모하메드 나시드 몰디브 전 대통령은 기후취약국포럼 성명을 통해 “모두가 공평하게 피해를 보는 건 아니지만, 이 비극적 사건들은 몰디브 같은 작은 섬나라든 서유럽 선진국이든 기후 위기 상황에선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켰다”고 짚었다.
기후변화 대응은 이제 이념적 구호가 아닌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됐다. 부국들도 언제든 기상이변이 닥칠 것이라는 경각심을 갖고, 이러한 현실에 적응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난 위기 전문가인 캐나다 로열로드대 진 슬릭 교수는 “계획을 세울 순 있지만 실행될지는 미지수”라며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돈을 써야 한다는 정치적 동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는 선진국들의 기후변화 대응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새로운 시험대다. 그동안 개도국들은 기후변화 피해에 대한 자금 지원을 선진국들에 요구해 왔다. 국제환경연구기관 세계자원연구소 울카 켈카르 인도지부장은 “개도국이 기상이변으로 막대한 피해를 당해도 선진국이 아니라 개도국 책임으로만 여겨졌다”며 “더욱 극심해진 기후재난이 부국들을 강타하면서 기후변화에 맞서고자 세계에 도움을 호소해 온 개도국들이 ‘양치기 소년’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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