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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운발(빨)주도성장 시대 아닌가

입력
2021.07.16 19: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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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결정됐다. 뉴스1

내년도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결정됐다. 뉴스1


스물두 살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시급은 4,000원. 그 시절 카페 알바를 해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4,000원은 때로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액수였다. 아메리카노를 제외한 대부분의 음료값보다 낮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죽어라 일해도 웬만한 커피 한 잔 사 먹을 수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 괜히 배알이 꼴려 비문인 줄 알면서도 시급보다 비싼 음료에는 존대어를 사용했다. "카페모카 나오셨습니다"같이.

이듬해 최저시급이 4,110원으로 인상되었다.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사실상 동결이었다. 내심 300원은 오르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때만 해도 최저임금위원회가 일찌감치 다음 연도 최저시급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10년도 더 전에 한 아르바이트가 생각난 건 순전히 12일 밤 전해진 뉴스 때문이다. 2022년도 최저시급이 916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5.1% 인상된 금액이다. 노동계는 정부가 최저시급 1만 원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즉각 반발했다. 9,160원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91만4,440원(209시간). 이 돈은 분명 노동자가 생계를 꾸리기엔 빠듯한 금액이다. 집세 내고 대출금 갚고 카드값 내다보면 남는 게 없다.

그렇다고 '빠듯한 월급'을 주는 사람들이 잘사는 것도 아니다. 매월 아르바이트생보다 적은 돈을 가져간다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는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편의점주들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갈아 넣고, "조금만 더 참아달라"는 말에 지친 식당들은 아예 문을 닫는다. 코로나19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시급 9,160원은 적지 않은 부담인 게 사실이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버겁다고 아우성치는 최저임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소득주도성장의 현주소다.

그럼 대체 돈은 누가 벌었나? 최근 몇 년간 경제 분야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부동산과 가상화폐다. 살고 있던 집의 가격이 폭등하고, 우연히 들고 있던 가상화폐로 화제가 된 사람은 평범한 월급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이건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설령 약간의 공부가 자산 증식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들, 그만한 돈을 번 것에 대한 정당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운이 좋았던 거다.

정치권 활동을 접어두고 학원을 차린 선배가 하나 있다. 그는 요즘 서핑을 즐기기 위해 매주 제주로 향한다. 얼마 전 제주에서 함께 흑돼지 삼겹살을 굽는데 그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대박이 나지 않는 한, 어차피 집은 못 사."

그러면서 우리는 적당히 벌어서 즐겁게 살자고 했다. 아등바등 살 필요가 뭐 있냐며. 대박을 쳐야만 기본적인 삶이 보장된다는 건 잔인하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게 현실이 되었다. 노동의 대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정규직 비율도 근 10년 새 최대로 증가했다. 정치권이 애써 뭉개고 외면하던 사이 출생에 의한, 행운에 의한 삶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제 행운에 기대는 게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었다. 어쩌면 듣도 보도 못 한 가상화폐에 전 재산을 묻어두고 일론 머스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언급 한번 해주길 기대하는 게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운발주도성장의 시대가 아닌가.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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