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의 건축' 공동저자 배기철 대표 인터뷰
"나무 좋은 건 아는데, 집이 비틀어지잖아."
배기철 건축사사무소 IDS 대표가 목조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으레 돌아오는 반응이다. 게다가 천년 고찰이 불에 타 소실됐다는 뉴스에 익숙한, 국보 1호 숭례문이 새빨간 불길에 무너지는 잔상을 간직한 한국인에게 목재는 거부감이 큰 건축 재료다.
배 대표는 이런 인식이 "편견"이라고 반박한다. 목재는 불에 타기는 하지만 오히려 "구조적으로 철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그는 "철은 화염에 휩싸이면 휘거나 녹는 등 변형되지만 나무는 표면이 탄화돼 숯이 된다"며 "때문에 불에 탄 철골은 재사용할 수 없지만, 나무는 겉의 숯 부분만 정리하면 건축 자재로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숭례문도 5시간 동안 불에 탔지만 3,000여 점의 목재는 살아 남았다.
콘크리트가 점령한 도시에서 목조 건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책 '木의 건축(청아출판사)'을 최근 펴낸, 배 대표와 14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국내에서 목조 건물 연구와 설계에 주목하고 있는 건축가다. 19.1m, 국내 최고층(5층 규모) 목조 건축물인 국립산림과학원의 '영주 CLT 한그린'이 그의 작품이다. 현재는 서울대 AI센터를 공동 설계 중인데, 이 역시 7층 규모의 목조 건축물로 계획하고 있다. AI센터가 완공되면 영주 CLT 한그린을 제치고 국내 최고층이 된다.
나무로는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게 지금까지 건축계의 불문율이었다. 물에 썩고 뒤틀리는 나무의 성질은 건물을 높이 올릴수록 커지는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더 심하게 변형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그러나 "건조 기술의 발달로 이런 성질은 더 이상 단점이 되지 않는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2008년부터 고층 목조 건물(영국 런던의 슈타트 하우스)을 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목조 건물의 경우 7층이 넘어가는 것부터 통상 고층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세계 최고층 목조 건물은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미에스토르네(2019년 완공)다. 18층 규모 85.4m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건 기후변화 시대, 목조 건축의 친환경성이다. 그는 "나무는 약 1㎥당 1이산화탄소톤(1tCO2)을 저장하고 있다"며 "목조 건물은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탄소 통조림'과 같다"고 표현했다. 2006년 유럽연합(EU) 의회가 채택한 '기후변화 저지, 목재를 사용하자'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 채의 목조 주택은 중형 승용차가 지구 2.5바퀴를 돌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75년간 저장할 수 있다.
콘크리트와 비교하면 건축 폐기물도 훨씬 적게 나온다. 배 대표는 "목조 건물은 조립식으로 짓기 때문에 시멘트나 철근처럼 현장에서 낭비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사용한다"며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목조 건물을 조립할 때부터 폐기시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해체를 고려한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재는 열전도율이 낮아 온도 변화에 취약한 '건축적 약자', 어린이·노인을 위한 건물로 적합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아파트, 콘크리트 일색인 도시의 풍경이 목조 건물로 보다 다채로워지는 게 건축가로서 그의 바람이다. 목재로 지은 아파트도 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한국의 주거 문화는 이곳이 분당인지, 동탄인지, 천안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획일적"이라며 "다양한 목조 건물이 지역의 특색을 살린, 새로운 도시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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