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차기서 실축한 선수 향한 비난
SNS 플랫폼들은 비판 게시물 삭제
정치권, 축구 협회도 한 목소리 규탄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결승전이 인종 차별로 얼룩졌다. 잉글랜드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에 실패하자 분노한 영국 축구팬들이 실축한 유색인종 선수를 향해 혐오 발언을 쏟아 내면서다. 온라인상에서 비난 수위가 도를 넘으면서 주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회사들은 문제의 게시물을 지웠고, 왕실과 정치권, 수사 당국도 한 목소리로 규탄에 나섰다.
트위터는 12일(현지시간) 최근 24시간 동안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에게 인종차별적 욕설을 퍼부은 트윗 1,000여개를 삭제하고, 운영규정을 위반한 여러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인종차별이라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줄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축구 단체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 역시 자신들이 운영하는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 욕설이 담긴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반복해서 보낼 경우 계정을 영구삭제 한다는 최근의 방침을 강조했다. 또 인종 차별 행위에도 적극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페이스북은 “잉글랜드 선수들을 괴롭히는 말과 계정을 빠르게 삭제했다”며 “운영규칙 위반사항에 계속 대처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우승을 놓친 영국 축구팬들의 난동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나온 조치다. 잉글랜드는 이날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20 결승전에서 연장 포함 120분동안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이후 승부차기 끝에 2-3으로 졌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이후 55년 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과 유로 첫 우승을 동시에 노렸지만 무산됐다.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 마커스 래시퍼드, 제이든 산초, 부카요 사카 세 선수를 향한 인신공격성 비난이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세 선수가 흑인인 까닭에 이들의 SNS 계정에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등의 인종 차별 발언이 줄을 이었다.
혐오 발언이 위험 수위를 넘으면서 축구 관계자들은 물론, 정치권과 수사당국도 연달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트위터에 “잉글랜드 대표팀은 SNS에서 인종 차별적 욕설이 아닌 영웅으로서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끔찍한 학대에 책임 있는 이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축구를 포함해 어느 곳이든 인종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고 규탄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도 “역겨운 행위를 저지른 이는 대표팀 팬으로 환영 받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며 “모든 형태의 차별을 강력히 비난한다”는 성명을 냈다. 축구협회장인 윌리엄 왕세손 역시 “선수들이 혐오행위를 겪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면서 “즉시 중단되고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난의 대상이 된 잉글랜드 대표팀은 공식 트위터 계정에 축구협회의 성명을 공유하며 “올 여름 대표팀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선수들 일부가 차별적인 욕설을 받은 점이 역겹다”는 글을 덧붙였다. 사카의 소속팀 아스날과 래시퍼드가 소속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인종차별을 비난하고 선수들을 지지하는 트윗을 올렸다.
수사 당국도 움직였다. 런던경시청은 “유로 2020 결승전 이후 SNS에 선수들을 직접 겨냥한 모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들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며 “수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상에서도 폭력이 잇따랐다. 웸블리 스타디움 인근에선 성난 잉글랜드 축구팬들이 이탈리아 축구팬, 경찰 등과 충돌했다. 이날 경찰에 체포된 축구팬만 45명에 달한다는 게 AP통신의 설명이다. 맨체스터시(市) 위딩턴에는 래시포드 선수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가 훼손돼 현지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영국 매체 더 선은 “우리는 스스로 축제를 망쳤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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