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부터는 3명 이상 모임이 불가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상 초유의 ‘3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령’ 발동 30분 전인 12일 오후 5시 30분.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 코로나19 안내 방송이 나오자 3, 4명씩 모여 있던 손님들이 가방을 싸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두어 차례의 방송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이들은 휴대폰에 눈을 고정한 채 주변에 시선 한 번 주 지 않는 1인 손님이거나 들릴락 말락 한 크기로 이야기하는 커플들. 빈자리는 좀처럼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오후 5시 45분. 출입문 앞에 있던 직원은 가게로 3인 이상 무리를 지어 들어오는 이들을 ‘검문’했다. “가족이신가요?” “네.” “가족관계증명서 있나요?” 잠시 실랑이가 이어지는 듯했지만, 아이 둘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아이들과 함께 6시 반이 넘도록 앉아서 빵과 음료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장 직원은 “주민등록등본으로 확인해야 했지만, 손님이 여권을 제시했다”며 “소란 피우기가 싫어 입출국 스탬프 날짜를 보고 자리를 줬다”고 말했다. 매장은 이후로도 1, 2인 손님들만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비슷한 시각 서울 홍익대입구. 3, 4명 단위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지만,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집에 간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6시 이전에도 ‘홍대입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지만, 오후 6시를 넘기자 '홍대입구'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펼쳐졌다. "바깥 바람이 시원해서 밖으로 나왔다"는 중국집 주인 고모(47)씨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믿기지 않는 듯 ”사람이 없어도 어떻게 이렇게 없을 수 있느냐”고 혼잣말을 했다. 사상 초유의 3인 집합 금지 조치가 연출한 초유의 풍경, 텅 빈 거리를 보는 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오후 6시 광화문과 종각 인근 도심. 한산한 식당가와 달리 버스정류장 인근 인도는 무척 붐볐다. 귀가를 서두르는 퇴근 인파가 점령한 탓이다. 종각 인근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한 직장인은 "사람이 몰릴 것 같아 퇴근을 앞당겨 나왔는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며 인상을 썼다. 실제 이날 오후 5시 20분부터 광화문과 종각 일대의 버스정류장은 퇴근 인파로 북적였고, 정류장에 멈추는 버스들은 이미 만원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서울 강남도 마찬가지. 버스정거장이 있는 대로변은 귀가를 서두르는 직장인들로, 이들을 실은 버스들도 번잡했다. 도로도 퇴근을 서두른 차량들로 극심한 정체를 보였다. 강남역-신논현역 대로변의 한 커피숍 직원은 "평소 밀리는 길이지만, 월요일에 이렇게 일찍부터 밀리는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오후 8시를 넘기자 거리는 급속도로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퇴근 인파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거리에 남은 것은 어두운 표정의 자영업자들이었다. 특히, 지난주까지만 해도 '삼삼사사' 몰려 먹고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강남역 인근 이면도로 식당, 유흥가는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영업을 오후 6시까지만 한다는 안내문을 붙이곤, 문을 걸어 잠근 곳도 있었다.
한 포장마차 주인은 "다들 술도 안 먹고 집에 가는지 오늘 손님은 장사가 그토록 안 되던 지난주의 절반이 채 안 된다"며 "코로나19에 죽는 게 아니라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방역 조치에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호프집 알바생들도 허공에 대고 건성으로 호객행위를 했다. 3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령은 그렇게 도시를 바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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