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먹고 많이 움직였는데도 살이 잘 빠지지 않다거나 시원한 곳에서도 땀이 뻘뻘 나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다면 갑상선에 문제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갑상선 환자들은 이를 단순히 체질이나 갱년기 증상으로 여기고 병으로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조관훈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갑상선 호르몬은 몸속 모든 기능을 적절히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중요한 기관이지만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위치와 역할로 인해 진단 시기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대부분의 갑상선 질환은 건강검진을 받고 난 뒤에야 치료를 시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갑상선 질환, 조기 발견·치료해야
갑상선은 몸에서 가장 큰 내분비기관이다. 무게는 10~15g 정도, 목의 앞 밑부분에 있다. 근육과 기도, 식도, 경동맥, 경정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갑상선의 기본 역할은 갑상선 호르몬을 생성하는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신체 기관 기능을 적절히 유지하고 신진대사를 조절한다. 심장을 뛰게 하고 장(腸)을 움직이게 하며 열도 만들어낸다. 특히 태아의 신경과 근골격계 성장을 돕는 기능으로 엄마와 태아에게도 꼭 필요한 호르몬이다. 따라서 갑상선 호르몬이 몸에서 필요한 양보다 많거나 적게 되면 그에 따른 증상이 나타난다.
조 교수는 “갑상선 질환은 조기 발견해 치료하면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으므로 증상이 악화하기 전에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국내 여성 암 중 가장 발병률이 높은 갑상선암도 비교적 ‘착한 암’으로 불리지만 100% 완치를 보장할 수 없고 다른 암과 달리 치료 후 10년까지 지켜봐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암이어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3~4배 더 많이 발병
갑상선 질환에는 갑상선기능항진증, 갑상선기능저하증, 갑상선염, 갑상선결절, 갑상선암 등이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발병률이 3~4배 정도 높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은 갑상선 호르몬이 많이 분비될 때 나타난다.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으로 몸의 면역 체계에서 갑상선세포를 외부 침입자로 잘못 인식해 그에 대항하는 항체를 만들어내고, 이 항체가 갑상선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면서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도록 한다.
가족력과 스트레스도 원인이다. 특히 환자의 20%는 가족력에 의해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는다. 더위를 쉽게 느끼고 체중이 감소한다. 설사와 심장박동 증가, 가려움증, 불안감, 피로감 등이 나타난다. 고열이나 부정맥, 심부전증까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하면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생긴다. 갱년기 질환과 증상이 비슷하다. 체온이 떨어져 추위를 견디기 힘들고 전신 무력감에 신진대사가 느려지면서 몸이 쉽게 붓고 목에서 쉰 소리가 나고 기억력 감퇴와 함께 적게 먹어도 체중이 크게 늘어 난다.
갑상선염은 갑상선에 바이러스나 자가면역 항체 같은 원인에 의해 염증이 생긴 상태를 말한다. 증상ㆍ원인에 따라 급성 갑상선염, 아급성 갑상선염, 만성 림프구성 갑상선염, 무통성 갑상선염 등으로 나뉜다.
국내에서 가장 흔한 원인은 면역이상과 함께 발생하는 자가면역성 갑상선염으로 갑상선기능저하증에 이를 수 있는 만성 림프구성 갑상선염(하시모토 갑상선염)이다.
갑상선결절은 갑상선에 종양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성인 10명 중 2~4명에서 발생할 정도로 흔히다. 갑상선 세포가 과다 증식해 조직 일부가 커지면서 혹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갑상선결절이 갑상선암은 아니다. 낭종(물혹), 양성 결절, 악성 결절 등으로 나뉜다.
갑상선결절이 의심되면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통해 확인한다. 이후 조직 검사로 양성인지 악성인지 판단한다. 50~60%는 양성 종양이지만 5~10%는 갑상선암으로 진단된다.
조 교수는 “갑상선염과 갑상선암과의 관계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결절이 더 잘 발생할 수 있는 상태이므로 정기 검사로 결절 발생 등을 확인하고 결절이 악성 소견이라면 세침 흡인 검사 등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임신 시 갑상선 이상 있다면 병원 찾아야
여성이 임신하면 임신 호르몬으로 인해 갑상선 기능이 임신 전보다 일시적으로 항진증처럼 보일 때가 있다. 따라서 임신 중 갑상선 기능 정상 수치 범위는 임신하지 않을 때와 다르다.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있으면 임신도 문제되지만, 임신 지속에도 문제가 생길 확률이 있고 태아의 갑상선 기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실제 임부의 갑상선 기능 저하가 태아의 지능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도 있다.
조 교수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있는 여성은 임신하면 갑상선 호르몬 요구량이 늘어나므로 용량 증량이 필요하고, 항진증이 있으면 약제를 중단하거나 변경을 해야 할 수 있기에 임신 전 갑상선 기능 이상이 있으면 임신이 확인되는 대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또한 “30세가 넘었거나 유산 경력이 3회 이상 있을 때도 임신이 확인되는 대로 갑상선 기능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과거력이 없는 30세 미만 여성은 갑상선 질환 자체에 대해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더 이상 ‘착한 암’이 아닌 갑상선암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갑상선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대부분 좋은 예후를 보인다. 실제 5년 생존율은 100.1%(2013~2017년 자료)로 일반인보다 오히려 오래 사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보통 5년 생존율로 대변되는 다른 암과 비교했을 때 얘기다. 갑상선암은 진행이 매우 느리므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 15년 이상으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조 교수는 “갑상선암은 초기엔 거의 증상이 없는데 목소리가 변한다든지, 음식 삼키는 데 걸린다든지 하는 증상이 있으면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면 완치가 어렵고 완치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갑상선암도 예후가 좋은 암이 아니고 사망률도 100명 중 1명 정도로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갑상선암과 갑상선 질환을 치료할 때는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 중요하다. 갑상선암은 5~10년 사이에 재발이 많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주기적인 초음파 검사와 함께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선 기능 평가와 티로글로불린(갑상선세포가 만드는 단백질)이라고 하는 갑상선암 수치에 대한 추적이 필요하다.
또 발견 당시 갑상선암의 진행 위험이 크지 않으면 수술하지 않고 지켜보기도 하는 만큼 주치의와 치료 방향을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갑상선 질환 중 항진증이라면 완치 판정 후에도 재발 위험이 있기에 담당의가 추적 검사 중단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주기적으로 갑상선 기능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 교수는 갑상선암 과잉 진료 논란에 대해 “건강검진 증가와 초음파 기술의 발달로 1㎝ 미만 미세유두암이 증가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의 갑상선암도 늘고 있고 특히 소아 갑상선암이 증가하는 점을 감안하면 과잉 진료만을 이유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갑상선암 발생에 있어 유전적 요인이 환경적 요인보다 비중이 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사람들이 쉽게 병에 걸릴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으므로 증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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