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졸업한 20대 이 여성, 도배사 된 후 성장했다고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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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졸업한 20대 이 여성, 도배사 된 후 성장했다고 하는 이유

입력
2021.07.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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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도배사 이야기' 펴낸 도배사 배윤슬

'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씨가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배씨는 "재미가 사라질 때까지는 일단 도배 일을 하고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예쁘게 꾸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새로운 배움이 그저 신기해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첫 직업인 사회복지사를 그만두고 도피처로 선택한 도배 일이었지만 생각 밖으로 잘 맞았다. 몸을 써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루하루의 단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책까지 내게 됐다. 최근 에세이 '청년 도배사 이야기'를 펴낸 배윤슬(28)씨 이야기다.

'청년 도배사 이야기'는 미대 출신 작가이자 청소부인 김예지씨의 '저 청소일 하는데요?'(2019), 간호사 이라윤씨의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2020) 등을 잇는 젊은 저자의 직업 에세이다. 이화외고·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출신인 배씨가 2년이 채 되지 않는 도배사 경험을 풀어냈다.

'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씨가 건설 현장에서 도배 작업을 하고 있다. 배윤슬씨 제공

지난 6일 만난 배씨는 "자신만의 삶의 기준과 지향점이 있는 청년들이 점점 더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청년 직업 에세이 출간 트렌드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자신의 직업을 '그런 일'이라고 표현하며 부정적 편견을 내비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그는 "부모님이 지인으로부터 '따님이 그런 일 하는 사람하고 눈 맞아서 결혼까지 하면 어떻게 하시게요?'라는 말도 들었다"며 "내가 해 보고 싶었던 일이고 내가 만족하고 있는 만큼 내 직업을 하찮게 여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사회복지사 업무도 보람은 컸다. 문제는 고착화된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시도라도 하려면 "하던 대로 하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매년 같은 패턴으로 해야 하는 업무라면 꼭 내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퇴사를 결심한 후 조직생활에 취약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으면서도 매 순간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 무엇일까 물색했다. 은퇴 없이 일할 수 있고 비교적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기술직을 생각했다. 그중 견딜 수 있을 만한 일을 찾다가 도배 일을 발견했다. 마지막까지 함께 놓고 고민했던 타일시공사는 타일 무게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건축도장사는 아토피 피부염이 있어 포기했다. 결심이 서자 곧장 도배학원을 알아봤고, 부모님 설득을 위한 '퇴사 계획서'를 썼다.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것 같아요. 도배학원에 가서도 상담 한번 받아 보지 않고 바로 결제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재미있어 하니까 부모님도 제 선택을 지지해 주세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 새 우물 찾아 삶의 다양한 질서 배워"

'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씨가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배씨는 조직 생활에서 벗어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직업을 찾으면서 기술직인 도배 업무를 생각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배씨는 "내 삶의 일부일 뿐인 직업으로 나를 평가하는 게 의아하다"고 했다. 수많은 도배사를 같은 직업이라는 이유로 '노가다'라며 하나의 특성으로 묶어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그저 "월급을 모아 해외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고 피자와 아메리카노, 조각케이크를 좋아하는" 20대 여성일 뿐이다. 배씨는 "생각해 보면 사회복지사일 때도 친구들이 '왜 넌 늘 따뜻하지 않냐'고 직업적 성향을 평소에도 강요하곤 했다"며 웃었다.

배씨는 책에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는 "도배 일을 하면서 직업적으로도 삶 전반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며 "우물 안 개구리였는데 내가 아는 우물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지금도 새로운 우물에 온 것이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질서가 있다는 것을 몸소 보고 느낀 게 저로서는 엄청난 성장인 셈이죠. 특히 건설 현장에서 만난, 주관과 목표가 뚜렷한 제 또래 청년들에게서 많이 배웠어요."

기술직의 매력 중 하나는 노력하고 고생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복지사 시절보다 지금 수입이 1.5배쯤 된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그만큼 늘었다. 머리를 쓰는 일은 우대받고 몸 쓰는 일은 그렇지 못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도 요즘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배씨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직업에 대한 구체적 정보 없이 부모님 조언을 따라 전문직을 선택한 친구들이 취업 5, 6년 차에 접어들면서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요즘은 SNS를 통해 도배사 되는 길을 알려 달라는 또래 청년들의 메시지도 자주 받는다.

배씨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몸을 써야 하는 일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실력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에서는 눈치 보지 않아도 돼 참 좋다"고 했다.

"도배 일을 하면서도 '요즘 애들은 왜 일 욕심이 없냐'는 지적을 받기도 해요. 꼭 누군가와 경쟁해 이기는 것만 성공이고 정답일까요? 어른들의 기준으로 '열정이 없다' '노력이 부족하다' 하지 마시고 삶의 기준이 다른 '요즘 애들'을 있는 그대로 봐 주면 좋겠어요."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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