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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거나 퇴사" 2년 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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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거나 퇴사" 2년 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유명무실'

입력
2021.07.09 15:00
수정
2021.07.09 18:43
0 0

<직장갑질119 조사>
괴로힘 호소 10명 중 7명 '참거나 모르는 척'
괴롭힘 인정받기 어려워 신고는 5% 불과

직장 내 괴롭힘 그래픽.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괴롭힘 그래픽. 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 산하 재단에서 일하던 직장인 A씨는 3만 원짜리 영수증을 보고서에서 누락했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애한테 부끄럽지 않냐"는 질책을 들었다. 가족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증상이 의심돼 연차를 요청한 날에는 "휴직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직장에서 숨쉬기가 곤란한 증상이 반복돼 병원을 찾았다가 공황장애 판정을 받은 A씨는 휴직계를 낸 뒤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조계종 산하 재단에 근무했던 B씨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했다. 10분이 넘으면 칼같이 "어디 가서 안 오느냐"며 상사가 메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B씨는 휴가 때도, 퇴근 후 밤 12시에도 전화를 받아야 했다. 몸이 안 좋아 쉬는 날조차 "네가 호르몬 때문에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B씨는 결국 9년 다녔던 첫 직장을 떠났다.

괴롭힘 금지법 2년 됐지만 "참거나 퇴사"

8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해온 3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 정도(68.4%)는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응답했다. '회사를 그만뒀다'고 응답한 경우도 19.5%에 달했다. 반면 회사나 관계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5.4%에 불과했다.

채용포털 사람인이 지난달 직장인 1,29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변화를 체감했나'라는 질문에 77.8%가 '체감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괴롭힘 금지법이 이달 16일 시행 2년이 됐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여전히 신고보다는 참거나 퇴사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업무 관련 욕설은 괴롭힘 아니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피해를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적 장벽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녹음파일이나 영상 같은 객관적 자료를 통해, 인과관계까지 설명하면서 자신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걸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일하면서 누가 괴롭힘 당할 것을 대비해 녹음까지 하겠냐"고 분통을 터뜨렸고, B씨도 "차라리 쌍욕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성희롱 사건처럼 명확하고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담당했던 '직장 내 괴롭힘 민사소송 청구 원고 기각' 사건을 블로그에 올린 김도훈 변호사도 "업무 관련 사안은 법원에서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상사가 심하게 질책하거나 욕설을 해도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면 괴롭힘으로 보지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1분마다 보고하라는 식의 비현실적 지시도 업무와 관련돼 있으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변호사는 자신에게 상담 요청을 해오는 피해자 가운데 법원이나 고용노동부에서 피해 인정을 받는 경우는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는 10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한 사용자에 과태료 1,000만 원, 직장 내 괴롭힘 조사나 가해자 징계 등 피해자 보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용자에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할 수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예방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괴롭힘이 어떤 식으로 벌어지고,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법원에선 피해자에게는 인과관계를 엄격히 묻고 가해자에겐 관대한 경향이 있다"며 재판부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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