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는 과학의 자리가 없다? 반도체 제조 강국에 정보기술(IT) 선진국을 자부하는 나라에서 무슨 말인가.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업대 생명과학센터 교수가 말하는 과학은 기술이 아니다. 그가 언급하는 ‘과학의 자리’는 과학자가 곧 철학자이기도 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과학자가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인정되는 공간이다.
철학과 과학을 전혀 관련 없는 학문으로 여기는 사람에겐 낯선 주장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 교수가 최근 펴낸 '과학의 자리'에서 자세히 설명하듯 서구 사상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상호 보완과 경쟁을 통해 진보해왔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에게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무기를 제공한 인물은 뉴턴이었고, 뉴턴의 고전역학은 칸트의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 20세기 서구에서 과학자는 철학자, 사상가가 됐고, 이들은 사회에 적극적으로 발언권을 행사했다.
한국 지식 생태계에선 조선시대 이후 근대과학을 제대로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다. 서양철학은 원래 근대과학에 대한 공부 없이는 깊은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한국 철학계는 서양철학을 주류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과학을 그 일부로 포용하지 않고 배척했다. 기술이 우선시되면서 과학은 기술을 위한 지식으로 종속됐고 과학자는 지식인이 아닌 기술인으로 취급받기에 이르렀다.
김 교수는 과학이 산업화의 시대에 "기술의 종속변수"로 수입됐고, 과학자는 "국가의 관리를 받는 일종의 관노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논의에선 늘 과학자가 배제됐고 인문학자가 모든 논의를 독점했다는 주장도 펼친다. 과학의 자리, 과학자의 자리는 애초부터 지워진 것이다.
저자는 동료 과학자들에게 실험실 밖으로 나와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라고 촉구한다. 과학 대중화라는 미명 아래 권력의 시종 노릇을 자처하지 말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피에로가 되거나 과학을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연예인이 되려 하지 말고 "사회의 변화를 실천하는 과학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 교수는 책 안의 책으로 구성된 별책부록에서 자신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중앙통제 중심의 거버넌스를 분산통제로 전환하고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 상황과 제도적 맥락에 맞는 새로운 과학기술 체계, 이를 이끌 리더십의 요건, 과학기술계 인사 검증 매뉴얼 등의 대안도 보여준다. 그의 바람은 과학이 한국 사회에 건강하게 자리 잡는 것이다. "한 세기 전, 과학은 진보의 상징이었다. 이제 다시 이곳 한국에서, 과학이 진보의 상징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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