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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바느질 잘하려고 여성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 아냐” 김란사의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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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바느질 잘하려고 여성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 아냐” 김란사의 신념

입력
2021.07.09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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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영 장편소설 '하란사'
최초의 초대 여성 유학생이자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 스승인 '김란사' 일대기 복원

“내 인생은 이렇게 밤중처럼 캄캄합니다. 나에게 빛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들이 배우고 알아야 자식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란사는 대한제국 최초의 여성 문학사이자 교육 계몽에 힘쓴 독립운동가다. 김란사애국지사기념사업회 제공

김란사는 대한제국 최초의 여성 문학사이자 교육 계몽에 힘쓴 독립운동가다. 김란사애국지사기념사업회 제공


1872년, 평양의 전주 김씨 집안에서 출생한 김란사는 1893년 인천항 감리서 고위관리인 17살 연상의 하상기와 결혼한다. 당시 기혼자는 들어갈 수 없었던 이화학당의 학칙을 깨고, 룰루 프라이 교장 앞에서 등잔불을 끄며 위와 같이 설득해 입학한 일화가 유명하다. 현재까지 널리 알려진 이름 ‘하란사’는 이화학당에 입학해 세례를 받고 얻은 영어 이름 ‘낸시(Nancy)’의 한자 음역에다 남편인 하상기의 성을 붙인 것이다.

1897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란사는 워싱턴 하워드대학과 디커니스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한 뒤 1906년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에서 문학사를 취득한다. 당시 대한제국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학사 취득자였다. 귀국 후에는 이화학당 사감, 교사, 교감으로 재직하며 학생자치단체인 이문회를 이끌었다. 당시 이화학당 제자였던 유관순 열사가 김란사의 권유로 이문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19년 4월 10일 파리국제강화회의에 밀사로 파견돼 향하던 중 베이징에서 의문사한다. 1995년 ‘화란사’라는 이름으로 건국훈장애족장을 받았지만 유족 공론화에 따라 2018년 ‘김란사’로 표기된 수여증명서를 다시 발급받았다.

하란사. 권비영 지음·특별한서재 발행·340쪽·1만4,000원

하란사. 권비영 지음·특별한서재 발행·340쪽·1만4,000원


권비영 작가의 ‘하란사’는 우리나라 초대 유학파 여성 인물 중 한 명이자 독립운동가인 이 김란사의 생애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100만 부 넘게 팔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 사랑받은 전작 ‘덕혜옹주’에 이어 또 한번 근대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단, 소설의 제목은 김란사보다 대중에게 친숙한 하란사로 했다.

소설은 당시 신여성이자 교육자로서 여성 계몽 운동에 앞장섰던 김란사의 면모를 충실하게 부각시킨다. 이화학당 동기인 화영과 기생 순이, 하녀 삼월 등 가상 인물들을 등장시켜 이들에게 공부를 권하는 김란사의 모습을 통해 실제 여성 교육에 힘쓴 김란사의 모습을 복원했다. “신여성이 많아져야 나라를 위한 운동도 할 수 있다”거나 “공부는 신분을 초월해서 해야 하는 걸세. 애국 또한 그러하고” 등의 대사를 통해 당시 여성 교육과 애국을 향한 김란사의 열망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소설에서 복원된 실제 김란사의 일화 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독립협회 회장과 평양 대성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던 유력 개화파 인사 윤치호(1865~1945)와의 논쟁이다. 윤치호는 1911년 7월 영문선교잡지인 ‘더 코리아 미션 필드’에 학당에 다니는 신여성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낸다. “학당에 다니는 여성들이 요리와 바느질을 할 줄 모르며 시어머니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며 신학교의 여성교육 방식에 불만을 표하는 내용이었다.

김란사가 윤치호에게 반박하는 글이 실린 영문선교잡지 '더 코리아 미션 필드' 1911년 12월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란사가 윤치호에게 반박하는 글이 실린 영문선교잡지 '더 코리아 미션 필드' 1911년 12월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에 대해 당시 이화학당 교사였던 김란사는 “학당 졸업생들이 요리할 줄 모른다고 해서 비난받아서는 안 되며, 옷감 재단, 바느질, 빨래, 다림질을 모르는 것에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며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요리와 바느질을 잘하려고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반박하는 기고를 같은 잡지에 기고한다. 기고문의 제목은 ‘항의’(A Protest)였다. 여성 교육의 목적이 가정주부와 며느리를 기르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여성 교육자로서의 김란사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소설인 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도 상당하다. 대표적인 것이 김란사가 미국 유학 중 만난 의친왕 이강에게 연심을 품었다는 내용이다. 의친왕 역시 1899년 미국으로 건너가 1905년까지 미국 로노크 대학교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소설은 김란사가 이 시기 의친왕과 교유하며 독립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연정을 키워갔다는 가정하에 로맨스 요소를 가미한다.

김란사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그 업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고, 심지어 기생 출신의 후처였다는 잘못된 정보로 알려져 있었다. 2021년 7월 기준 전체 독립유공자 1만6,685명 중 여성 독립유공자는 526명(3.2%)에 불과하다. 소설 김란사는 앞으로 우리 앞에 새롭게 떠오를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 재조명 작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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