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으로 죽어가는 미국 노동자들… 한국에 울리는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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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으로 죽어가는 미국 노동자들… 한국에 울리는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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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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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 약물 과다복용,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 2017년에만 15만8,000명이 이러한 이유로 사망했다. 승객을 가득 태운 초대형 여객기가 매일 세대씩 추락한 셈이라는 학계의 평가가 나올 정도로 상황은 악화됐다. 제조업 붕괴로부터 시작된 경제적 양극화와 공동체의 붕괴는 미국인들, 특히 저학력 중년 백인들을 정신적 경제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자살과 약물, 알코올 중독은 그 결과다. 빈곤과 복지를 연구해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과 프린스턴대 교수 앤 케이스는 이들의 죽음에 ‘절망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국 기대수명의 역주행

절망사의 급증은 미국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상황으로 이끌었다. 미국인의 기대수명이 2014년부터 3년 동안 줄어든 것이다. 미국 역사상 처음 발생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가 어려운 현상이다. 문명의 진보에 따라서 인류의 기대수명 역시 높아져왔기 때문이다. 디턴과 케이스는 45세부터 54세 사이의 백인, 특히 저학력 중년 백인의 절망사를 기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 이들 집단에서 인구 10만명당 절망사 사망자는 1990년 30명에서 2017년 92명으로 3배로 증가했다. 1999년부터 2017년까지 발생한 절망사 사망자는 60만명에 달한다. 절망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생존해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지난 세기 미국의 경제를 이끌던 철강, 자동차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사진은 2011년 7월 27일 미시간주 햄트램크 공장에서 쉐보레 볼트를 조립하는 GM 직원. GM은 2018년 11월에도 5개 공장을 폐쇄하고 수천 명을 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노동자의 안락한 삶 사라져

디턴과 케이스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이 장기간 천천히 악화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절망사가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화로 미국의 공장들이 멕시코나 중국으로 옮겨가는 한편,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가 일어나 노동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기가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진 사람들도 철강이나 자동차 공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고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가며 안락하게 살았던 시절은 20세기로 끝났다.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대졸 이상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의 소득은 고졸 노동자들의 소득보다 40% 높았지만 2000년에 이 비율은 두 배(80%)로 늘어났다.

임금 수준과 일자리 질의 악화는 방아쇠일 뿐이다. 경제 위기는 가족과 공동체, 종교 등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안전고리를 허물어버렸다. 저학력 중년 백인들은 안정감을 잃어가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서 노조에 가입하고 평생 직장을 약속 받던 시절,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 사라졌다. 공장에 일하면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은 꿈조차 꾸기 어렵다. 한때 ‘블루칼라 귀족’이라 불리던 계급의 종말이다.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앵거스 디턴, 앤 케이스 지음ㆍ이진원 옮김ㆍ한국경제신문 발행ㆍ448쪽ㆍ2만2,000원


끝날 기미가 없는 양극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고학력자들은 교육을 틀어쥐고 양극화를 옹호한다. 대학에서 얻은 지식으로 부를 쌓아서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한편, 그러한 구조를 정당한 질서로 포장한다. 좋은 교육을 받은 자녀들은 그 질서를 이어간다. 대열에서 밀려난 전통적 노동자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기업들은 저숙련 일자리를 외주화해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한다. 교육 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회사의 구성원으로써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노동자들은 “우리는 OO기업 식구”라는 자부심마저 잃어버렸다.

불평등이 아닌 불공정한 과정이 문제

디턴과 케이스는 불평등을 문제삼지 않는다. 불평등은 자유롭게 경쟁한다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노동자가 가난해지는 원인이 세계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고학력자들과 부자들 그리고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질서를 구축해놓고 그것이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네가 능력이 있었다면 문제가 없는 일”이라고 제도를 옹호한다.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은 ‘지대추구’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로비스트들의 활동비 내역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불리한 경쟁에 놓여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2018년 동안 로비스트들은 34억6,000만달러를 활동비로 썼다. 이 가운데 노동 단체들이 사용한 비용은 4,700만달러뿐이었다. 디턴과 케이스는 자본주의가 번영하려면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육수준이 낮은 미국인들이 더 많은 돈을 벌도록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는 진보를 이끄는 힘이지만 그것이 사람들을 섬겨야지, 사람들이 그것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호소다.

"한국도 비슷한 문제 우려"

미국의 비극은 한국과는 무관한 이야기일까? 디턴과 케이스는 그들의 연구를 한국에 소개하면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썼다. “한국은 미국처럼 심각한 약물과 술로 인한 사망률이 올라가고 있지는 않지만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위험한 수준에 이르러 있습니다. 사회적 격변은 미국의 절망사와 한국의 자살 모두의 근본적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변화와 경제 성장을 이뤄낸 국가지만 그런 변화의 이면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안식처로부터 단절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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