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드러난 나이키의 글로벌 갑질... 후려치고, 전가하고,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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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6년 만에 드러난 나이키의 글로벌 갑질... 후려치고, 전가하고, 끊고

입력
2021.07.08 04:30
수정
2021.07.08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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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2조 원의 매출을 올린 세계적 스포츠용품기업 나이키가 국내 중소 벤처협력업체들에게 16년 동안 글로벌 갑질을 해온 정황이 뒤늦게 드러났다. 견디다 못한 국내 협력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서다. 단가 후려치기, 비용 전가 등 숨겨졌던 나이키의 민낯은 상당히 흉했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소업체 석영텍스타일은 미국 나이키 본사를 비롯해 대만의 주문생산(OEM) 업체인 펭타이와 파우첸, 그리고 국내 거래대행사인 부강아이앤씨와 빅코퍼레이션, 비코, 장포 등 7개사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 신고서를 지난 6일 부산 공정위에 접수했다. 우월한 사업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협력업체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등 하도급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단가 후려치고 대만 OEM 업체 손실까지 떠넘기고

국내 중소협력업체들에 대한 갑질은 대만 OEM 업체들의 거래대행 역할을 해온 부강아이앤씨 등 국내 4개사가 주도했다. 우선 ‘단가 할인’ 명목으로 납품 단가를 강제로 후려쳤다. 나이키가 책정한 공급가보다 더 싸게 제품을 공급받은 것이다. 석영텍스타일 관계자는 “국내 15개사가 16년간 강제 할인으로 받지 못한 금액이 55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거래대행사가 납품단가에서 3~5%를 후려치는 행위를 나이키 본사에 여러 번 문제 제기해 나이키도 잘 알고 있으나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중소협력업체들은 이렇게 후려친 금액이 거래대행사의 유지비용으로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나이키가 거래대행사 비용마저 중소 벤처협력사들에게 떠넘겨온 셈이다.

특히 나이키는 대만 OEM 생산업체들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입은 손해도 국내 중소협력업체들이 보상하도록 강요했다. 석영텍스타일 관계자는 “미국 나이키 본사 지시로 대만 파우첸과 펭타이 잘못으로 발생한 자재 손실 비용 17만 달러 이상을 강제로 물어줬다”며 “거래가 끊길까 봐 안 들어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나이키 및 대만업체들, 국내 거래대행사들은 국내 협력업체들과 ‘업계 관행’을 이유로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 또한 법적 문제를 피하려는 나이키의 꼼수로 보고 있다.

나이키의 요구로 석영텍스타일이 회사 내부에 부착한 '나이키 기업윤리강령'. 석영 측에서는 이 또한 나이키가 직접 거래관계를 부인하지만 사실상 거래관계를 자인하는 증거로 본다. 석영텍스타일 제공


나이키는 책임 피하는 거래구조

이런 갑질이 가능했던 건 나이키의 독특한 거래구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나이키는 2005년부터 거래 방식을 바꿔 신발을 만드는 대만의 OEM 생산업체 펭타이, 파우첸과 이들에게 자재를 납품하는 15개 국내 중소협력업체들 사이에 국내 거래대행 4개사를 끼워 넣었다. 거래대행사들은 대만 OEM 업체들에게 필요한 자재를 국내 중소업체들로부터 납품받아 전달하고, 대만업체들이 대금을 지급하면 이를 국내 중소협력업체에 전달하는 일을 한다. 2005년 이전에는 국내 중소협력업체들이 OEM 생산업체들과 직접 거래했는데 갑자기 물품과 돈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거래대행사들이 끼어든 것이다.

그런데 나이키는 자재 개발, 납품 단가, 공급량 등을 국내 협력업체들과 직접 협의해 결정한다. 이 과정에 대만 OEM 생산업체나 거래대행사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즉 나이키는 국내 협력업체들에게 직접 지시를 하면서 자재 납품과 대금 지급은 거래대행사를 거치는 구조를 택한 것이다. 업계에선 나이키나 대만 OEM 생산업체들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어서 직접 책임을 지지 않는 반면 거래대행사를 통해 편하게 국내 협력업체들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국내 하도급법 위반 소지가 있다. 법무법인 해마루의 유재민 변호사는 “나이키의 이상한 거래 방식은 하도급법 제20조에서 금지한 우회적으로 하도급법을 피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OEM 생산에 필요한 자재 업체들과 물량과 단가 협상 등을 하면 대금도 직접 지급한다.

국내 중소협력업체 석영텍스타일이 개발한 특수 자재 '미라클 와플'로 만든 '나이키 어댑트 BB.2.0' 농구화(왼쪽). 표면에 와플 문양(원 안)이 늘어나며 충격을 흡수해 찢어지지 않도록 잡아준다. 한진탁 인턴기자


일방적 계약 해지로 중소 벤처협력사들 고사 위기

더 황당한 것은 나이키가 국내 협력업체들에게 ‘나이키의 윤리 강령’을 회사에 부착하고 지키도록 요구했다는 점이다. 윤리 강령을 보면 ‘공정한 공급망 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 협력업체를 차별하지 말 것’ 등이 명시돼 있다. 협력업체 관계자는 “나이키가 윤리강령을 걸도록 요구한 것은 직접 거래관계를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정작 나이키는 지키지 않는 윤리 강령을 협력업체에게 강요하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 행태”라고 비난했다.

나이키는 이런 문제를 지적한 중소업체와 거래를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이에 따라 1994년부터 26년간 나이키에 신발 자재를 납품해온 석영텍스타일은 지난해 10월 나이키로부터 돌연 거래 중단 통보를 받고 지난 2월부터 거래가 끊겨 회사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나이키 본사 직원과 협력업체 사이에 나눈 통화 녹음 파일에는 "우리는 석영 측과 관계가 없다. 8개월 동안 검토해 (석영 측에) 법적 문제가 있다고 보고 거래 중지를 결정했다"는 본사 직원의 얘기가 담겨있다. 그러나 거래 중지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석영텍스타일 관계자는 “미국 나이키 본사에서 앞으로 어떤 OEM 업체하고도 거래를 하지 못할 것이라며 거래를 중단해 우리와 협력관계인 3, 4개 영세 벤처기업들까지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나이키의 글로벌 갑질이 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 변호사는 “우회적으로 하도급법 회피를 금지한 하도급법 제20조는 물론 경제적 이익의 부당 요구를 금지한 하도급법 제12조 위반으로 볼 수 있다”며 “나이키가 미국 기업이지만 국내 기업에 피해를 준 것이어서 공정위 조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나이키코리아는 “법적 다툼 소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내부 입장”이라며 “이 문제는 소송 대기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 말할 게 없다”고 답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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