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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려서 검사하겠습니까” 연기로만 만나는 김소진 

입력
2021.07.07 07: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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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배우 김소진의 영화 속 다양한 모습.

배우 김소진의 영화 속 다양한 모습.

얼마 전 한 일간지를 보고 놀랐다.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 김소진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어서였다. 김소진은 영화계에서 인터뷰 안 하기로 소문난 배우다. 무명 배우이면 몰라도 ‘공작’과 ‘마약왕’(2018), ‘남산의 부장들’(2020) 등 제작비 100억 원이 넘는 대작에 예사로 출연하는 배우인데도 그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관객몰이를 위해, 또는 자신의 모습을 더 알려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인터뷰에 적극 임하는 여느 배우들과 사뭇 다르다.

인터뷰뿐만 아니다. 배우들은 출연 영화가 개봉하면 당연한 수순처럼 여러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나온다. 자신 주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척 영화를 알리려 노력하곤 한다. 어떤 배우가 채널을 번갈아 가며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면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김소진은 예외다. 그는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친 적이 없다.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대중은 그를 오로지 연기로만 만날 수 있다. 김소진처럼 지명도에 비해 실제 삶이나 성격, 주변 이야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배우는 없을 듯하다.

김소진은 영화 '더 킹'에서 비리 검사를 감찰하는 안희연 검사를 연기해 2017년 각종 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쇼박스 제공

김소진은 영화 '더 킹'에서 비리 검사를 감찰하는 안희연 검사를 연기해 2017년 각종 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쇼박스 제공

영화 관계자들 역시 김소진과 조우하기 어려웠다. 김소진은 지난해 11월까지 소속사 없이 활동했다. 개인 일정을 관리해주는 매니저조차 없었다. 제작자들이 영화 출연 섭외를 위해 김소진에게 연락을 하려면 이메일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매니저는 없고, 배우 전화번호는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소문해 알게 된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김소진은 제작비 200여억 원이 들어간 대작 ‘모가디슈’(28일 개봉)를 모로코에서 촬영할 때도 매니저 없이 지냈다. 그는 크랭크인하기 전 일찌감치 모로코로 건너가 홀로 여행하고 생활하며 현지 적응을 했다고 한다. 2017년 영화 ‘더 킹’으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등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던 스타답지 않은 면모다. 베일에 싸인 배우이다 보니 영화계에선 “평소엔 고향 강원 인제에서 생활하다 연기할 때만 서울 등으로 나온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일상도 유명 배우답지 않다. 촬영이 끝나거나 모임을 마치면 늦은 밤에도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한다. ‘모가디슈’를 제작한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는 “얼굴을 알아본 취객에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 밤늦게 혼자 전철 타고 다니지 말라 했더니 ‘피하면 되죠’라고 답하더라”고 말했다.

김소진의 평범하지 않은 행보는 그를 오직 연기로만 평가하게 한다.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코믹한 모습을 선보이지 않기에 그가 맡은 배역마다 오롯이 빠져들 수 있다.

김소진은 영화 '미성년'에서 아이를 홀로 키우다 유부남과 눈이 맞은 미희를 연기했다. 쇼박스 제공

김소진은 영화 '미성년'에서 아이를 홀로 키우다 유부남과 눈이 맞은 미희를 연기했다. 쇼박스 제공

김소진의 연기가 눈에 들어온 첫 영화는 ‘초능력자’(2010)였다. 다방 레지 미스 리를 연기했는데, 능청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뇌리에 각인된 연기에도 불구하고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서 그가 맡은 이지수 기자를 보고선, 미스 리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더 킹’의 안희연 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본 듯한데, 이지수 기자가 생각나진 않았다. 경상도 사투리가 배인, 당차고도 능글능글한 목소리로 “검찰 역사에 이 정도 쓰레기들이 있었습니까” “쪽팔려서 검사하겠습니까”라는 대사를 그가 소화할 때 그저 감탄하며 연기를 즐겼다.

흥행에선 별 재미를 못 본 영화 ‘미성년’은 김소진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가 연기한 미희는 중년 유부남 대원(김윤석)과 눈이 맞아 임신을 한다. 미희는 사산 후 병원 로비에서 다른 사람의 과자를 아무 말 없이 뺏어먹는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한 원망을 어린아이 같은 행동으로 발산하는 장면이다. 미희는 퇴원 후 집에 돌아와선 텅 빈 눈빛으로 컵라면을 먹는다. 다시 살아내야 할 엄혹한 현실에 대한 어른스런 자세다. 두 극단의 감정을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전달한다. 서늘하면서도 애잔하다.

김소진은 28일 개봉하는 영화 '모가디슈'에서 주소말리아 대사의 부인 역할을 맡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소진은 28일 개봉하는 영화 '모가디슈'에서 주소말리아 대사의 부인 역할을 맡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약왕’의 성숙경 연기 역시 기억에 유난히 남는다. 성숙경은 밀수꾼에서 마약 거물이 된 남편 이두삼(송강호)을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에게 빼앗긴다. 이 사실을 인지한 후 소리 내 우는데, 절규 어린 울음소리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귀에 울린다. 김소진을 만나 인터뷰하며 연기와 영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는 연기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말하고 있으니까.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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