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대표명소 '직지사'에서 '연화지'로, 김호중의 힘?
코로나 팬데민 종식되면 연화지 버스킹 명소 될 것
이미자 키운 김천 출신 나화랑 선생도 잊지 말아야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잘 모르나 보다. 진심을 다해도 나에게 상처를 주네. 이 나이 먹도록 사람을 잘 모르나 보다. 사람은 보여도 마음은 보이지 않아. 이 나이 되어서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원래는 조항조의 노래였다. 지금은 김호중의 노래로 자리잡았다. 가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때문이다. 방황하던 시절, 아껴주던 선생님, 다시 좌절, 그리고 트롯이라는 전혀 뜻밖의 장르에서의 부활. 그의 산전수전이 비단 그의 것이기만 하랴. 세상 살면서 달고 쓴 맛을 고루 맛 본 트롯 팬들의 이들의 한결 같은 인생사일 것이다. 진심을 다해도 상처를 입고, 사람도 세상도 모르고 살았나 보다 자탄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사람 덕분에 하루하루 살아간다. 김호중의 ‘고맙소’가 팬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관통하는 이유일 것이다. 김호중이라는 존재 하나로 ‘패밀리’가 만들어진 이유일 것이다.
김호중의 후배들이 연화지에서 버스킹 하는 상상
"김천 하면 직지사였지만, 지금은 연화지가 첫손에 꼽힙니다."
김호중에게 고마운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김천 사람들이다. 김호중 덕분에 김천은 ‘고맙소’의 도시가 됐다. 김천의 대표적인 곳은 원래 직지사였지만 현재 김천은 연화지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그 역시 김호중의 영향이다. 연화지에서 올려다보면 김호중이 졸업한 김천예술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온다. 걸어서 오 분 남짓이다. 연화지는 지금도 김천예고 학생들의 산책로다. 연화지는 방과 후 혹은 자투리 시간에 친구들과 한 바퀴 돌면서 젊음, 청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류용구 김천시 상인연합회장은 "김호중 역시 학창 시절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김천예고 학생들의 버스킹 장소,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상인회 회원과 지역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수상 무대도 그중의 하나다. 연화지를 가로지르는 아치형이나 다리를 놓고 호수 중간에 무대를 설치한다는 복안이다. 초청 1순위는 김천예고 학생들이다. 류 회장은 "학생들의 실력이 아마추어를 넘어섰다"면서 "무대만 열어주면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멋진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접근성이 좋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김천역 바로 앞에 위치해 기차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방문하기에 좋다. 김천이 키워낸 인재, 김호중이 생활했던 곳이라는 타이틀을 김천시에서도 밀어준다면 전국 각지에서 김호중 팬들이 방문하게 된다. 김천예고 학생들이 선배 김호중의 숨결을 느끼며 실제로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도 필요하다. 류씨는 "김천이 베드타운으로서의 역할을 잘하면 구미에서 출퇴근할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일은 구미에서하고 주말에는 살기 좋은 김천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호중 이전의 불세출의 뮤지션, 나화랑
이 모든 것이 김호중 덕분에 생겨난 활력이다. 그러나 김천뿐 아니라 대한민국 가요팬이라면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이 한명 있다. 어쩌면 전국민이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다. 바로 작곡가 나화랑 선생이다.
나화랑 선생은 김천에서 태어나 광복 후 한국 대중가요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한 작곡가이다. 대표곡은 '열아홉 순정', '울산 큰애기', '제물포 아가씨' 등이 있다. 나화랑 선생은 일반 대중가요작곡가와 다르게 독특한 점이 있다. 민요와 깊은 인연이 있다는 점이다. 나화랑 선생님은 50년대 중반 민요 작업을 중점으로 뒀던 킹스타(Kingstar)레코드사에서 문예부장을 맡았다. 그 당시 문예부장은 작곡, 편곡, 선곡, 가수 선정, 음반 제작, 홍보를 모두 책임지는 자리였다. 요즘으로 치면 음악PD다. 60년대부터 구전되던 민요가 LP판에 담겨 보급되기 시작했다. 킹스타에서 출시한 민요 음반의 90%는 모두 나화랑 선생님이 편곡과 제작을 맡은 작품들이었다. 요컨대, 김천은 김호중의 도시이기 이전에 나화랑의 도시였다.
아니나다를까 기자가 김천에 막 도착했을 때, 연화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이미자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자는 나화랑이 작곡한 '열아홉 순정'을 불렀다. 평범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침 그 시간에 나화랑의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건 우연의 일치 치고는 소름이 돋았다. 마치 나화랑 선생이 "김호중을 취재하러 왔거든 내 이야기도 좀 해주시게" 하고 말을 건네는 듯했다.
나화랑을 잊혀진 뮤지션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많다. 김천 시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홍보 부족에 대중성이 떨어진다. 트롯 열풍에도 나화랑의 히트곡은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다. '나화랑기념사업회'는 나화랑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김천에서 '나화랑 가요를 사랑하는 모임'으로 시작해 나화랑 기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는 나화랑 100주년 기념사업을 계획했다. 매년 나화랑 음악제를 개최한다. 100주년을 즈음해 나화랑기념사업회와 김천시, kbs 가요무대 제작 팀이 협약해 나화랑 탄생 100주년 가요 무대를 김천에서 녹화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시민들이 나화랑 선생님과 나화랑 생가에 대해 주목하려면 김천시의 부단한 노력과 전략이 필요하다. 김호중이 주목받고 있는 이 시점에 김천 출신의 음악인이라는 연결고리를 이용하면 연화지, 나화랑, 김호중 세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박은솔 대구한국일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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