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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물과 싸우는 최전선 '디성'... 정규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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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물과 싸우는 최전선 '디성'... 정규직이 절실하다

입력
2021.07.06 09:30
수정
2021.07.0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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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요청→확인→또 요청'의 무한반복
지난해 직원 1명당 담당 피해자만 160명
"부족한 예산에 기간제 인력…개선 필요"

성적 촬영물을 몰래 찍고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늘면서 피해자 지원을 수행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업무도 바빠졌다. 올 상반기에만 영상 삭제를 지원한 건수가 6만 건에 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성적 촬영물을 몰래 찍고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늘면서 피해자 지원을 수행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업무도 바빠졌다. 올 상반기에만 영상 삭제를 지원한 건수가 6만 건에 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디지털 성범죄(비동의 성적 촬영물을 이용한 범죄)가 횡행하는 대표적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면서 실제 피해자 12명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들 피해자들이 특히 고통스러워 한 대목 중 하나는 "불법촬영물의 신속한 삭제가 어렵다"는 부분. 추가 유포를 막으려면 삭제해야 한다. 늦어질수록 피해자의 고통은 배가 된다.

HRW는 그 때문에라도 불법촬영물을 추적, 삭제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간단히 줄여 흔히 '디성'이라고 불리는 이곳을 지난 1일 찾았다. 그곳은 무한증식을 거듭하는 불법촬영물과 24시간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전쟁터였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한국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추적 조사해 작성한 보고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표지. HRW 제공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한국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추적 조사해 작성한 보고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표지. HRW 제공


디성의 무기는 '눈'과 '손가락'

디성 직원의 하루 일과는 '삭제'의 무한반복이다. 피해상담이 접수되면 삭제 요청을 하고 삭제 여부를 확인하고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삭제 요청을 한다.

가장 먼저 사진이나 영상, 유포된 인터넷주소(URL) 정보로 유포 범위를 파악한 뒤 각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한다. 빠르면 3시간 안에 지워지면 다행. 하지만 3, 4번씩 다시 요청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네가 뭔데 삭제하라고 하냐"며 욕설이 날아드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절차를 밟아 강제삭제, 접속차단 등 조치를 취하려면 시간이 훨씬 더 지체된다.

그나마 예전에 비해 기술이 좋아져 다행이다. 예전엔 사이트마다 찾아다니며 일일이 사진, 영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지금은 사진이나 영상을 시스템에 업로드하면 고유의 특징값이 추출되고 온라인상의 비슷한 사진이나 영상들을 찾아준다. 이때부턴 직원의 '눈'과 '손가락'이 무기다. 피해자와 관련된 것들을 빨리 찾아 삭제를 요청해야 한다.

서울 중구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 현판. 외부인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이곳에서 공개할 수 있는 사진은 현판뿐이다. 디성 제공

서울 중구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 현판. 외부인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이곳에서 공개할 수 있는 사진은 현판뿐이다. 디성 제공


직원 1명이 피해자 160명 담당

삭제됐다고 끝이 아니다.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세계에서 '100% 삭제'란 없다. 주기적인 모니터링 작업이 뒤따른다. 지난해 디성 정규직 17명에 연말 한시적으로 투입된 기간제 직원까지 합치면 월 평균 인력은 31명. 이들이 맡은 피해자는 모두 4,973명이다. 1인당 160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오늘 피해자 1명의 영상을 지운다면, 나머지 159명의 영상을 다시 찾아보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한다.

이 전 과정의 핵심은 '피해자 보호'다. 극심한 공포에 떨고 있는 피해자들이기에 방문 신고는 1%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 전화나 인터넷으로 신고한다. 삭제 사실 조차도 피해자가 인터넷을 통해 조회해볼 수 있게 해뒀다. 전 과정은 절대 비밀이고,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다. 직원들도 보안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피해자당 지원기간은 3년이지만, 그 고통을 알기에 3년 기한이 차면 직원들을 주저없이 "연장하라"고 권한다.

이들의 활약 덕에 디성이 처음 운영된 2018년 2만8,879건이었던 삭제지원 건수는 지난해 15만8,760건으로 5배 넘게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만 6만 건에 달해 지난해 상반기 대비 2배나 늘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삭제 지원 건수 현황. 박구원 기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삭제 지원 건수 현황. 박구원 기자


턱없는 인력과 예산… "보수적 시각이 문제"

2019년부터 3년째 삭제지원 업무를 하는 이모(28)씨는 지난달에만 5,000개의 영상을 혼자 지웠다. 지난해부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피해자가 몰라도 먼저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바뀌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몰려드는 일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씨는 "사이트 하나를 싹 청소했을 때 보람이 적지 않지만, 쥐어짠 보람"이라며 씁쓸해 했다.

이 때문에 디성에게 가장 절실한 건 '정규직 직원'이다. 그나마 디성 같은 기관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지난해 17명에서 올해 39명으로 직원이 늘긴 했다. 하지만 새로 뽑은 22명은 모두 기간제 인력이다. 현 예산 3억5,800만 원으론 정규직을 더 뽑을 수 없어서다.

박성혜 디성 팀장은 "교육하고 적응 기간을 갖다 보면 어느새 계약이 끝나고 담당자가 바뀌는 건 피해자한테도 부담"이라며 "다른 공공기관 직원의 정규직화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예산당국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매년 여성 폭력 관련 예산은 가장 빠듯하게, 소액으로 잡힌다"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보수적 인식에서 벗어나 현장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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