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A씨는 정규직인 상사에게 3년 동안 폭언과 따돌림 등을 당했다. 참다 못한 A씨는 회사에 신고했지만, 조사관은 오히려 상사 편을 들며 유난을 떤다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동료들의 비난을 받는 등 2차 가해까지 이어졌다.
공공기관들의 '직장갑질'이 여전히 처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아직도 관련 조례·지침이나 신고센터를 만들지 않은 곳이 태반이다. 정부가 2018년 '공공부문 갑질 근절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공공기관들이 이를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4일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발표한 '광역시도 직장갑질 대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서울시와 광주시, 경기도, 전라북도 4곳만 '미흡' 판정을 받았고, 나머지 13개 곳은 '부족'으로 평가됐다.
이 조사는 ①신고 현황 ②조례?지침 ③근절 대책 ④신고센터 ⑤전담직원 ⑥실태 조사 ⑦예방 교육 등 일곱 가지 항목별로 점수를 매기는 식으로 진행됐다. 가장 우수한 '양호'가 일곱 가지 항목 가운데 다섯 건 이상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17개 광역시도 중 '양호'를 받은 곳은 하나도 없었다.
특히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조례와 규칙(매뉴얼)을 만들어둔 곳은 서울시, 울산시, 경기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5곳에 불과했고, 대전시와 세종시, 강원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등 5곳은 조례·규칙 중 어느 것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이 평가는 정부가 2018년 7월 발표한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을 기준으로 진행됐다. 당시 정부는 "대한민국의 직장갑질은 세계적인 수치"라며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으로 △조속한 관련 조례 제정 및 계획 수립과 체계적 시행 △주기적인 실태조사와 모니터링 △안전한 상담?신고체계 마련 △실효적인 예방 교육 시행 △공공기관 평가 반영 등을 요구한 바 있다.
김성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공공부문 가운데 지방정부 사례를 먼저 조사했는데, 중앙정부 발표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직무유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정부가 당장 중앙부처와 17개 광역시도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공공기관 중에서도 위탁기관에서의 갑질이 심각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올 상반기 접수된 이메일 상담·제보 중 공공기관 사례가 87건이었는데 그중 32건이 정부나 공공기관이 위탁한 기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김 노무사는 "위탁기관은 센터장 권력이 막강하고, 인원이 소수여서 직장갑질을 신고하기가 매우 어렵고 신고 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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