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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찾아간 피카소의 그림

입력
2021.07.01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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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당한 피카소의 '여인의 머리' 공개하는 그리스 경찰. 로이터 연합뉴스

도난 당한 피카소의 '여인의 머리' 공개하는 그리스 경찰. 로이터 연합뉴스


그림의 집은 어디일까? 화가가 붓끝에 물감을 묻혀 그리던 화실일까, 제일 알맞은 자리를 골라 오랫동안 걸려 있던 미술관일까? 그리스의 미술관에서 누군가 훔쳐갔던 피카소의 그림 '여인의 머리'가 9년 만에 돌아왔다는 기사를 보고, 이제 그 그림도 제 고향을 찾아갔구나 싶어서 잠시 다정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피카소의 그림처럼 제 집을 잃고 돌아다닌 작품도 흔치 않다. 경매 최고가를 뽐내는 몸값만큼이나 미술관의 도난사건에 자주 등장했고, "프랑코 독재정권이 지속되는 한 스페인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반체제 인사였기에 고국에 그의 그림이 걸린 것도,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생긴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담은 대표작 '게르니카' 역시 해외를 전전하다 피카소가 죽은 지 8년이 지난 1981년에야 마드리드의 미술관에 안착했다. 스페인에 진정한 자유가 오면 '게르니카'를 보내 달라는 유언대로였다.

돌아갈 곳을 잃은 피카소에게도 고향은 있었다. 유난히 태양이 빛나는 스페인 남부의 해안도시 말라가(Malaga), 로마시대부터 있던 극장을 지나고 중세 유대인이 살던 골목도 지나면 조그만 광장 한쪽에 그가 태어난 집이 있다. 말보다 먼저 그림을 배울 만큼 탁월한 재능은 화가 지망생이었던 아빠의 붓마저 꺾게 만들었다지만, 이 광장에서 놀던 기억만큼은 아이였나 보다. 이곳에 날아들던 비둘기를 떠올리며 막내딸 이름을 스페인어로 비둘기인 '팔로마'로 지었으니 말이다.

130년 넘게 영업해 온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르면 어린 피카소도 이 앞에서 군침을 흘렸을까 상상한다. 개업 때부터 만들었다는 아몬드와 꿀을 넣은 아이스크림을 한 컵 가득. 미숫가루처럼 구수하면서도 달콤한 이 아이스크림이 그에게도 일요일의 즐거움이었을까. 말라가 와인의 팬들이 성지순례하듯 방문하는 옛날식 술집에도 피카소가 어린 시절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20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팔고 있는 향기로운 와인은 피카소와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해변 산책로에도 피카소의 본명인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라는 이름이 붙었다. 피카소의 연인들이 낳은 자손들은 그의 성을 얻기 위해 소송까지 벌였다는데 이 거리는 손쉽게 그의 이름을 얻은 셈이다. 무엇보다 거장의 내밀한 가족사로 가득한 피카소 미술관은 놓칠 수 없다. 피카소가 죽고 30년 후에야 유언대로 고향에 지어진 미술관을 둘러보며 제자리를 찾는 게 참 중요하다 싶었다. 이번에 그리스 국립미술관으로 돌아온 그림은 나치 독일에 저항하는 그리스 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피카소가 준 선물이었다. 파리 어디쯤의 화실에서 그려졌지만, 평생 독재를 거부한 그의 뜻을 담은 그림이 머물러야 할 고향은 그 뜻의 무게를 아는 그리스인들의 미술관이었다.

여행작가를 잠시 휴업한 채 직장인으로 사는 요즘, 내가 돌아갈 자리는 어딜까 가끔 생각한다. 다시 여행상품이 팔리고 격리 면제도 생기니 이제 슬슬 비행기 탈 준비를 해야 하나 사뭇 진지하게 고민도 한다. 청와대가 자기 자리라고 생각하는 대선주자의 말들도 쏟아지는 요즘이다. 독재가 끝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피카소의 말처럼 부디 유언으로라도 끝내 지킬 수 있는 말만 들렸으면 좋겠다. 평생을 걸고 되풀이해서 질문하고 새겨 가며 찾아가는 길이, 제 자리일 테니 말이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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