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중인 前정보수장, 옥중 통화서 제안
대선 불복 우파 후보 당선 도우려는 의도
과거 野의원 매수 시도 탄로나 실각 빌미
차기 대통령 선거 패배 결과에 불복 중이지만 점점 불리해지는 여론 형세에 낙심이 큰 페루 우파 대선 후보 게이코 후지모리(46)가 더 막다른 궁지로 몰리게 생겼다. 1990년대 대통령을 지냈던 부친 알베르토 후지모리(81·수감 중)의 최측근이 “선거 심판관에게 뇌물을 먹여 대선 결과를 뒤집어 보자”면서 옥중 음모를 꾸민 사실까지 폭로돼 버린 탓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페루 언론과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재 마약밀매 등 혐의로 구속수감돼 있는 전 국가정보국 수장 블라디미르 몬테시노스(76)가 최근 한 퇴역 장교에게 한 말이 유출돼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페르난도 올리베라 전 의원이 공개한 녹취 파일엔 전직 대통령(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이자 이번 대선 후보였던 게이코 후지모리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게끔 선거 심판관에게 뇌물을 건네자고 제안하는 몬테시노스의 통화 목소리가 담겼다. 그는 “나는 그냥 (후지모리를) 도우려는 것”이라며 “내가 돕지 않으면 그 여자애(후지모리)는 결국 감옥에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몬테시노스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집권 시절(1990~2000년), 대통령의 오른팔 노릇을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보 공작들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2000년 야당 의원을 뇌물로 매수하려는 시도가 관련 영상 공개로 탄로 나면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실각에 결정적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당시 영상을 세상에 알린 이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올리베라 전 의원이었다.
이후 도주한 몬테시노스는 2001년 체포됐고, 마약 밀매와 무기 도입 리베이트 수수, 공금 횡령 등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아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러시아 로마노프 정권의 막후 권력자였지만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은 ‘요승’ 라스푸틴과의 공통점 때문에 ‘안데스의 라스푸틴’으로도 불린다.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몬테시노스는 아버지에 이어 딸까지 또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6일 대선 결선 투표가 치러진 페루는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당선인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좌파 후보 페드로 카스티요한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후지모리 측이 ‘선거 사기’ 의혹을 제기하며, 일부 표의 무효화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몬테시노스가 제의한 뇌물 제공의 대상은 후지모리의 이의 제기가 적절한지 검토 중인 국가선거심판원의 심판관들(4명)이다.
후지모리는 자기와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녹음 파일을 듣고선 자신도 분개했다며 ‘대중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게 그의 현실이다. ‘후지모리가 정당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쿠데타를 시도하려 한다’고 몰아붙이는 카스티요 진영은 물론, 후지모리에 우호적이던 보수 성향 페루 최대 일간지 엘코메르시오까지 최근 사설에서 “그만하면 됐다”며 후지모리로부터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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