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하원에 초당적 탄핵 요구서 제출
코로나 문책에 비리 묵인 의혹 설상가상
지지층 이탈… 23%만 "국정 수행 긍정적"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누적 사망자 수가 5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극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피해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 자리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성토 여론이 거센 와중에, 백신 비리에 연루됐다는 추문 폭탄까지 터져 버렸다. 탄핵 움직임이 가시화한 데다, 대통령 선거도 당장 내년이라 정권 교체는 거의 기정사실처럼 굳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브라질 하원에 보우소나루 대통령 탄핵 요구서가 이날 제출됐다. 요구서에는 좌파와 중도 성향 정치인들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범여권 세력에서 발을 뺀 우파 정당 소속 의원들까지 총 46명이 서명했다. 탄핵 사유로는 코로나19 부실 대응을 비롯, 무려 20여 건이 열거됐다.
아직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탄핵이 이뤄지려면 하원에서 전체 의원 513명 중 3분의 2(342명) 이상, 상원 전체 의원(81명) 중 3분의 2(54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헌법상 탄핵 절차 개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아르투르 리라 하원의장이 보우소나루 대통령 편이기도 하다. 리라 의장은 지금껏 하원에 접수된 탄핵 요구서가 120여 건인데도 “추진 여건이 되지 않는다” “요구서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 등 핑계를 대며 판단을 미뤄 왔다.
그러나 상황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무능’에다 ‘부패’ 혐의까지 더해지면서다. 악재는 잇따르고 있다. 먼저 인도산 코로나19 백신(코백신) 구매 과정에서 정부가 실제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계약을 맺었는데, 그 배후에 정부·정치권 고위 인사들의 압력과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묵인이 있었다는 의혹이 최근 상원 코로나19 국정조사에서 제기됐다. 이에 지난달 29일 브라질 정부는 16억 헤알(3,645억 원) 상당 2,000만 회 접종분 규모의 해당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합의된 회당 가격 15달러(1만7,000원)는 원래 가격의 10배가량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독직은 연거푸 드러났다. 호베르투 페헤이라 지아스 물류국장을 해고했다고 이날 보건부가 밝혔는데,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하던 올 2월 그가 4억 회분 규모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조건으로 백신 접종 회당 1달러(1,100원)씩의 뇌물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판매업자의 언론 인터뷰로 폭로됐기 때문이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여전히 하루 감염자 규모가 다른 나라보다 큰 브라질에서 (정권 비리 탓에) 백신 확보 기회가 날아가 버린 데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스캔들은 사법 처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리스크 컨설팅 업체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 미주 연구 부문 책임자인 히메나 블랑코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정치적 탄핵보다 형사처벌 절차가 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연방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정조사에서 나오기도 했다. 다만 아우구스토 아라스 검찰총장도 대통령에 우호적인 인사이긴 하다.
설령 탄핵이나 기소를 피하더라도 재선을 노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앞은 첩첩산중이다. 전날 공개된 브라질 여론조사업체 이펙(Ipec)의 조사 결과를 보면, 그의 지지 기반은 빠르게 붕괴 중이다.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23%에 그친 반면, 부정적 평가는 50%를 웃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내년 대선 예상 득표율도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49%)의 절반도 안 되는 23%다.
현재까지 브라질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는 51만8,000여 명으로 미국(62만여 명)에 이어 세계 2위이고, 최근 2주간 사망자는 2만2,300여 명으로 가장 많다.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의 비율은 12.3%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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