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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쓰다 노래할 땐 서울 말? 뮤지컬 가사의 배신

입력
2021.07.02 04:30
수정
2023.11.30 12:5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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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 월간 공연전산망 편집장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지난달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창작 뮤지컬 '란'에서는 지역색을 살린 사투리들이 대사로 대거 등장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제공

지난달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창작 뮤지컬 '란'에서는 지역색을 살린 사투리들이 대사로 대거 등장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제공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5일까지 열린다. 올해 창작지원작 중 대구 지역 창작자의 작품 '란'을 보았다. 대구 권번 출신의 일패기생 최계란과 대구 아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작품 내에서 어린 시절부터 최계란과 함께 자랐던 애인 같은 친구인 김종성은 구수한 대구 사투리를 쓴다. 지역 축제이고, 지역에서 만든 뮤지컬인 만큼 향토색이 짙은 말투는 친근감을 준다. 그런데 종성이 노래를 부를 때는 갑자기 서울 말투가 되어 버린다.

뮤지컬에서 사투리를 구사하는 인물이 종종 등장하지만 '란'의 종성처럼 노래 부를 때는 말투가 바뀌는 사례가 많다. 뮤지컬의 노래는 말과는 다른 표현이다 보니 같은 인물의 말투가 갑자기 변해도 큰 이물감 없이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뮤지컬에서 노래는 대사의 연장이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말투가 바뀌는 일이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다.

미국 뮤지컬의 자존심이자 뮤지컬을 예술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스티븐 손드하임은 "뮤지컬 작곡가는 노래로 말하는 작가"라고 말했다. 그는 뛰어난 작곡가였지만 브로드웨이에 정식 데뷔한 것은 1957년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사가로서였다. 이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1950년대 미국 이민자 사회의 갈등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 시기에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청년들의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는데, 원작에서 두 집안의 오랜 앙숙을 이민자 사회 젊은이들의 갈등으로 대치한 것이다.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과 작사가 손드하임은 '마리아' '투나잇' 등 명곡을 만들어 작품 흥행에 일조했다. 특히 당시 청년들이 쓰는 언어와 말투를 가사에 담아낸 손드하임은 불만에 가득 찬 청년들의 정서를 잘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극 중 마리아(줄리엣)가 토니(로미오)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는 각운을 기가 막히게 잘 살려 음악성을 강조한 명곡으로, 손드하임의 언어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곡이다.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 / 오, 소 프리티(Oh, so pretty) / 아이 필 프리티 앤드 위티 앤 브라이트!(I feel pretty and witty and bright!) / 앤드 아이 피티(And I pity)'(노래 '아이 필 프리티'의 첫 구절) 그런데 훗날 손드하임은 이 노래의 작사를 두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이 노래 가사가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마리아가 부르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뮤지컬 가사는 단순히 듣기 좋아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뮤지컬의 가사는 엄중해야 한다.

해외 뮤지컬의 경우 극본 작가는 몰라도 작사가는 아는 작품들이 많다. '팔 조이'의 로렌스 하트 '아이다'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팀 라이스는 극본을 쓴 작가가 아닌 작사가이다. 그만큼 뮤지컬에서 작사가의 존재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뮤지컬의 경우 작가가 가사까지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국내 뮤지컬 작가가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과 가사를 쓰는 재능이 모두 출중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만큼 가사의 중요성에 덜 민감해서다. K드라마에서 K팝을 넘어 이제는 K뮤지컬의 시대를 이야기하곤 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힐 만큼 열정적으로 많은 뮤지컬을 제작하는 나라다. K뮤지컬이 허황된 꿈은 아니다. 그 길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한국 뮤지컬의 제작력이 좀 더 발전해야 하는데, 우선 과제 중 하나가 뛰어난 뮤지컬 작사가를 키우는 일이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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