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미비 들어 상무위원 등 고위급 해임
확진자 발생 등 코로나 관련 변고 가능성
조직 기강 다잡기 등 의도된 문책일 수도
“인민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을 발생시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가 당 최고위급 인사 일부를 물갈이했다. ‘국가비상방역’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이유를 들어 간부들을 호되게 꾸짖고 문책한 것이다. 질책의 원인과 결과가 각각 방역 미비, 중대 사건이라는 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북한 내부에 모종의 ‘변고’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일각에선 최근 김 위원장이 추진하는 경제 성과 독려를 위해 당 수뇌부를 희생양 삼아 내부 기강 다잡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노동신문은 30일, 전날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소식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국가중대사를 맡은 책임 간부들이 국가비상방역전의 장기화 요구에 따라 조직기구적, 물질적 및 과학기술적 대책을 세울 데 대한 당의 중요결정 집행을 태공(태업)함으로써 국가와 인민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켰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엄중한 후과’ ‘무능력’ ‘사상적 결점’ 등 비난 수위도 상당히 셌다.
중대 사건은 코로나 '변고'?
질책은 ‘구두 경고’에서 끝나지 않았다. 신문은 이날 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 당 중앙위 비서와 국가기관 간부 등을 교체했다고 보도했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 위원장을 포함해 5명밖에 없는 북한 권력구도의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문책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인사 면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방역과 경제 문제가 언급된 점으로 미뤄 북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김덕훈 내각 총리나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낙마 가능성이 점쳐진다. 특히 리 부위원장은 조선중앙TV가 공개한 화면에서 주석단 정치국 구성원들이 거수 의결을 할 때 손을 들지 않아 해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관심은 문책의 진짜 이유다. 북측 설명대로 방역이 문제라면 코로나19 확산과 직결돼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여전히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 창궐 후 단 한 명의 확진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올 1월부터 국경을 걸어 잠그고 3만 건이 넘는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하는 등 철저한 방역 덕분에 통제가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의 방역 체계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2019년 중국에서 유입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급격히 퍼져 돼지가 전멸할 정도로 속수무책 피해를 당한 사례도 있다. 신의주, 혜산 등 북중 국경지대 주요 도시의 감염병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내부기강 수습·백신 원조 포석도
다른 시각도 있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면 한가하게 인사나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경제난으로 느슨해진 조직 기강을 바로잡고 혼란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김 위원장이 감염병 핑계를 댔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지난해 수해로 인한 ‘삼중고’에 처해 있다. 해외 원조가 사실상 전무한 터라 현재로선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다. 나라 전체를 ‘쥐어짜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동요할 조짐을 보이자 그 책임을 최고위 간부들에게 돌렸다는 것이다. 리 부위원장 해임설이 불거진 것도 앞서 15~18일 진행된 당 전원회의에서 “각 지역 군량미를 주민에게 공급하라”는 김 위원장의 지시를 제때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문책일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 등 인도적 지원을 바라는 대외적 신호로도 읽힌다. 식량난을 인정한 전원회의에 이어 위기 국면을 계속 부각해 국제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게끔 하는 노림수라는 풀이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민관이 일치단결해도 외부의 도움 없이 북한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이 요즘 내부 문제 해결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제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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