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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 SNS에 '한남더힐 000'… 고가 아파트로 자기 소개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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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 SNS에 '한남더힐 000'… 고가 아파트로 자기 소개 유행

입력
2021.07.01 04:45
수정
2021.07.01 09:4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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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소개란에 고급 브랜드 아파트 병기 추세
'언젠가는 살고 싶은 마음 표현' 실거주 드물어
"성공 동경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 자조"

실거래가 기준으로 5년 연속 전국 최고가 아파트인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 전경. 재벌가, 대기업 간부, 전직 고위 관료, 유명 연예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어 '대한민국 상위 1%' 주거지로 꼽힌다. 배우한 기자

실거래가 기준으로 5년 연속 전국 최고가 아파트인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 전경. 재벌가, 대기업 간부, 전직 고위 관료, 유명 연예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어 '대한민국 상위 1%' 주거지로 꼽힌다. 배우한 기자

"진짜 살고 있으면 적을 필요 없죠. 내부 사진 찍어 올리면 되니까. 그냥 재미로 썼어요."

서울 은평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A(17)군은 2주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의 자기 계정 소개란에 고가 브랜드 아파트 '한남더힐'을 적어놨다. 계정명 역시 성을 제외한 이름 두 글자와 아파트명을 합친 '한남더힐 00'로 설정했다. 메신저를 통해 A군에게 실제 한남더힐에 살고 있냐고 묻자 "유행이라기에 따라해본 것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주위에서도 정말 이런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SNS에) 적어놓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최근 1020세대 사이에 고급 아파트 브랜드명을 SNS 소개란에 적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당초 '요즘 10대 금수저들이 SNS에서 자기 소개하는 법'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으나, 당사자들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실제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들 대부분은 동기 부여를 위해 혹은 단순히 재미 차원에서 아파트 이름을 적었다고 답했다.

SNS 아이디에 최고급 아파트 이름

인스타그램 검색창에 한남더힐, 트리마제 등 고급 아파트 이름을 치면 '아파트명+이름'으로 설정해놓은 계정이 다수 검색된다.

인스타그램 검색창에 한남더힐, 트리마제 등 고급 아파트 이름을 치면 '아파트명+이름'으로 설정해놓은 계정이 다수 검색된다.

30일 한국일보 취재에 응한 10대 중 일부는 고급 아파트를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목표로 여기고 있었다. 고등학생 B양은 "요즘 유튜브 댓글을 보면 본인 아이디를 '00대학교 00학과 23학번'식으로 해놓고 자극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아파트 브랜드명을 써놓는 것도 비슷한 심리"라고 말했다. 수험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가고 싶은 대학 스티커를 책상에 붙이고 대학 전경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하듯, 아파트 이름 적기 역시 일종의 '자기 암시'라는 게 B양의 설명이다.

주식과 비트코인 등 자산을 적극 증식하는 문화에 일찍 노출된 세대인 만큼 SNS에 아파트 이름을 적은 청소년 중 일부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SNS 소개란 첫 줄에 '2030년까지 트리마제 입주'라고 적은 10대 이용자는 '(주식) 장 중에는 말 걸지 마세요' '황금 만능주의'라는 문구도 함께 적었다.

"웃겨서" "어이없어서" 따라했다는 20대

성인이 된 20대 중에도 아파트 이름을 SNS에 표기해놓은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이들 대부분은 "요즘 10대들 이야기를 듣고 우스워서 따라해봤다"고 밝혔다. 본인 SNS 이름을 '트리마제 000'로 설정해놓은 20대 여성은 "(그런 유행을) 조롱하려는 생각으로 해본 거지만 동시에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일종의 '밈'(유행이 되는 문화적 코드)이 된 데에는, 그런 유치한 행동이 묘한 자조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란 나름의 해석도 내놨다.

적어놓은 고급 아파트에 실제로 거주하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트리마제 강아지 00'라는 이름으로 SNS 계정을 운영하는 20대 여성 C씨는 넓은 집에서 자신과 함께 사는 강아지의 일상을 찍어 올리고 있었다. C씨는 "보시다시피 전적으로 강아지를 보여주기 위해 개설한 계정"이라며 "내 사진은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다"고 했다.

'가난 혐오'와 '플렉스'는 동전의 양면

전문가들은 언젠가 살고 싶은 아파트로 자기를 소개하는 현상의 기저에 뿌리 깊은 계급의식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엔 임대아파트에 사는 동급생에게 '멸칭'을 붙여가며 혐오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요즘엔 '플렉스(성공이나 부를 뽐내는 문화)'를 긍정하고 동경하는 문화가 두드러진다"며 "두 현상 모두 공고한 계급의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젊은층의 경우 '아파트 이름 적기'를 단순한 재미나 조롱 차원에서 따라하고 있다지만, 이 역시 우리 사회에 팽배한 패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 평론가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력으론 최고급 아파트에 살기 어렵기 때문에, 유머와 자조가 한데 뒤섞여 이런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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