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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생존자가 쓴 참사 "세월호 공감 힘들면 차라리 모른 척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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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생존자가 쓴 참사 "세월호 공감 힘들면 차라리 모른 척해라"

입력
2021.06.29 14:30
수정
2021.06.2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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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저자 이선민 작가
1995년 6월 29일 사고 당시 지하 1층에 머물러?
'세월호 지겹다는 당신께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 써
"일부 편향된 시민의 폭식투쟁 도저히 이해 못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로서 최근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책을 펴낸 이선민 작가가 2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고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화면 캡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로서 최근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책을 펴낸 이선민 작가가 2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고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화면 캡처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이면서 최근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책을 펴낸 이선민 작가(필명 산만언니)는 "(참사 생존자의 처지를) 공감하지 못하겠으면 배워서라도 알고, 그게 어려우면 모른 척하고 지나가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 26년이 된 2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참사 생존자를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를 묻는 질문에 "간단하다.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주고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면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간발의 차로 갈린 생사, 다행이지만...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보도한 한국일보 1995년 6월 30일 자 기사.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보도한 한국일보 1995년 6월 30일 자 기사.

이씨는 26년 전 오늘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았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은 명품 백화점이었던 삼풍백화점(지하 4층~지상 5층)의 A동은 불과 10초 만에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6명이 실종됐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그는 A동 지하 1층 물품보관소에서 근무하던 중 사고 직전 다른 건물인 B동에서 잠시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B동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A동이 무너져 내렸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무너진 건물의 파편에 맞아 엄청나게 피를 흘리다 구조됐다"며 "찰나에 무너졌고, 그 순간 생과 사가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추리소설 마지막 장면 본 것처럼 허무"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추리소설 마지막 장을 본 것 같았어요. 생에 아무런 기대가 없는 거예요. 그 전에는 대학을 가는 게 목표이고, 작은 것 하나 성취해도 좋았는데 그 모든 게 무의미한 거예요.”

이씨는 "남들은 다행이라고 얘기하지만, 죽음의 끝을 봐 그렇지 않다"며 "착하게 살고, 잘 살고, 이런 것 필요 없이 서 있는 공간에 따라서 사람이 죽는구나, 그리고 인간이 굉장히 위대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파리처럼 그냥 허무하게 다들 죽는구나라는 생각에 생이 너무 허무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에 따르면 한쪽에만 있었어도 (후유증이) 좀 덜했을 텐데 생과 사를 건넌 드라마틱한 경험이 오히려 더 정신과적 충격을 입혔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무너진 건물 쪽에서는 살아있는 쪽을 보지 못했고, 안 무너진 쪽에 있는 사람들은 무너진 그 처참함을 몰라 남들은 경험치가 하나지만, 저는 지나가는 찰나에 (건물이) 무너져서 (양쪽 모두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다른 생존자들과 얘기 나눠보진 못했지만, 미디어에 나오는 최후 생존자들도 아직도 울고 힘들어 한다"며 "어제 위령탑에 갔는데 딸과 손녀를 같이 잃은 엄마를 만나서 어제 일처럼 같이 울었다"고 했다.

"참사 생존자·유족은 연대 필요"

이씨는 2018년 한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글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를 쓴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름과 얼굴만 바뀔 뿐 계속 반복되는 참사 유족에게 손 내밀고, 연대하는 차원에서 쓴 이 글은 당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지며 큰 공감을 받았다.

이씨는 "(세월호 참사가) '지겹다' '그만해라'라고 하거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단식 투쟁에 일부 편향된 시민들이 '폭식투쟁'을 한 행동을 상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며 "남들이 나한테 그만하라고 해서 내가 슬픈 걸 멈출 수는 없는데 왜 상갓집 앞에서 그렇게 예의없게 구는지 너무 의아했다"고 말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는 책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건강이) 많이 좋아져 방송에 나와 얘기도 하고, 그런 얘기들을 책에 썼다"며 "저처럼 비슷한 참사를 겪은 분들, 또 누구나 인생에서 붕괴를 겪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 나는 이런 일들이 있었고, 이렇게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라는 여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직도 약 먹고 있고, 아마 죽을 때까지 극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크든 작든 참사 생존자들 혹은 유가족들은 어떤 종류라도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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