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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서 공깃돌처럼 떨어진 파편이…" 조선 금속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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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서 공깃돌처럼 떨어진 파편이…" 조선 금속활자였다

입력
2021.06.29 18:31
수정
2021.06.29 18:4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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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인사동에서 1600점 무더기 발굴
훈민정음 창제 표기 반영 한글 활자 포함
천문시계 등 과학 유산 실물도 대규모 발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한글 금속활자의 세부 모습. 문화재청 제공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한글 금속활자의 세부 모습. 문화재청 제공

"금이 간 항아리가 있었는데, 파편이 떨어지면서 공깃돌 같은 게 같이 흘러내렸어요. 세척해서 확인해 보니 금속활자였습니다."

29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의 오경택 원장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예상치 않게 무더기로 발견된 금속 유물 출토 당시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문화재청과 수도문물연구원은 이날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수도문물연구원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일대인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을 조사해 왔다. 땅을 개발하기 전 문화재 조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창제(1443년)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가 출토됐고,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조선 시대 금속활자로 확인된 ‘을해자’보다 20여 년 앞선 ‘갑인자’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도 나왔다. 세종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시계, 세종 또는 중종 시기의 물시계 주전, 17세기 소형화기인 총통 등도 발굴했다. 한글 창제의 여파와 당시 인쇄 활동, 조선 시대 과학기술의 실체를 확인할 자료다.

항아리 내부에서 발견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의 모습. 1,600여 점에 달한다. 조선 전기 여러 종류의 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문화재청 제공

항아리 내부에서 발견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의 모습. 1,600여 점에 달한다. 조선 전기 여러 종류의 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문화재청 제공


최고(最古) 한글 금속활자 실물 등 조선 전기 금속활자 대거 출토

조선 전기 여러 종류의 금속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유물은 ‘ㅭ(이영보래·끝이 닫히는 소리를 표시하는 여린 히읗)’ 등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돼 사용됐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이 명확히 드러나는 금속활자다. 동국정운은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로, 한문을 훈민정음으로 표음하는 방법이 담겼다.

백두현 경북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일파를 설득해야 했던 세종은, 훈민정음이 학자들이 중시하는 한자음을 올바르게 쓸 수 있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동국정운식 표기를 만들었다”며 “이번에 출토된 활자에서 동국정운식 활자 표기가 대거 나왔다”고 설명했다.

둘 이상의 글자가 한 덩어리로 주조된 금속활자도 이번 발굴에서 출토됐다. 문화재청 제공

둘 이상의 글자가 한 덩어리로 주조된 금속활자도 이번 발굴에서 출토됐다. 문화재청 제공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도 특징적이다. 대(大)자, 중(中) 자를 비롯, 주석 등에 사용된 소(小)자, 특소자가 모두 확인됐다. 둘 이상의 글자가 한 덩어리로 주조된 ‘연주활자’가 나오기도 했다. 백 교수는 “한문을 공부할 때 한문과 한문 사이에 ‘~이고’ 등과 같은 한글 토씨를 넣는데, 반복적으로 쓰는 것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갑인자 추정 한문 활자도 나와… 최종 확인 시 큰 성과

세종 시기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도 다량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제공

세종 시기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도 다량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제공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제작한 해의 육십갑자를 이름으로 붙였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조 때 ‘을해자(1455년)’보다 20년가량 이른 세종 시기의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한문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도 눈길을 끈다. 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은 “갑인자에 이르러서는 밀랍을 사용하지 않고도 틈새를 메워 인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해 인쇄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며 “금속활자 인쇄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금속활자의 실물이 발견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추후 연구를 통해 갑인자인 것이 최종 확인되면, 대단한 성과로 기록될 전망이다. 서양에서 가장 처음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의 인쇄 시기(1450년경)보다 앞서 있는 인쇄본과 금속활자 실물을 세계 최초로 동시에 확보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 교수는 “인쇄된 책에 나오는 글자를 일일이 대조해서 서체 등을 확인하는 과정이 남았다. 확실히 검증되면 굉장히 중요한 발견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 시기 과학기술 유물도 출토… 기록으로만 전해오다 실체 확인

세종 당시 발전된 과학기술을 이용해 독창적으로 만들어졌던 일성정시의. 도기호 옆에 매납된 동종의 상부에서 절단된 상태로 가지런하게 놓인 상태로 출토됐다. 문화재청 제공

세종 당시 발전된 과학기술을 이용해 독창적으로 만들어졌던 일성정시의. 도기호 옆에 매납된 동종의 상부에서 절단된 상태로 가지런하게 놓인 상태로 출토됐다. 문화재청 제공

이와 더불어 세종 시기 주야(晝夜) 겸용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세종 또는 중종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자동 물시계의 주전(시보 장치 부품) 등 중요 과학기술 유물이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그동안 실체가 전해진 것이 없었으나 이번에 처음 발견된 것이라 그 의미가 크다.

이번에 발굴된 주전은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발굴된 주전은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문화재청 제공

일성정시의는 활자가 담긴 항아리 옆에서 발견됐다. 일성정시의는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 시간을 가늠하던 도구다. 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명예교수는 “일성정시의는 서양 학자에 의해 1520년 이후 서양에서 제작한 휴대용 밤 시계보다 더 정확하고 정교한 기기로 평가받을 만큼 뛰어난 것”이라며 “세종 당시 제작한 4벌 중 하나로 추정되는 귀한 유물”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총통류 8점, 동종 1점 등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발굴됐다. 사진은 총통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이 밖에도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총통류 8점, 동종 1점 등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발굴됐다. 사진은 총통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유물이 나온 지점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로 보신각과 탑골공원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다. 종로 뒤편에 있는 작은 골목인 피맛골과 인접한 땅이다. 이곳은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로, 경제·문화 중심지인 견평방(堅平坊)에 속했다고 한다.

유물은 일반 건물 창고로 추정되는 곳에서 대거 나왔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승철 팀장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묻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관가 건물이 있었던 곳도 아닌데,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유물이 해당 지역에서 발견된 것은 좀 더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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