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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서 백신까지, 삶을 구원하는 가설-검증

입력
2021.07.03 06: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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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파스타 한 그릇을 만드는 사소한 과정에도 가설을 세운 후 검증하는 탐구 방법이 사용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파스타 한 그릇을 만드는 사소한 과정에도 가설을 세운 후 검증하는 탐구 방법이 사용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사한 작은 공간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서양처럼 스탠딩 파티를 하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양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파스타였다. 내 레시피는 1인분에 특화돼 있었기에 양이 늘어난 파스타의 맛이 평소와 달랐다. 밍밍한 파스타에 면수를 조금씩 더 넣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정체불명의 면 뭉텅이가 보였다. 면수 때문이라는 가설부터 틀렸음을 깨달았지만 다시 실험할 시간이 없었다.

가설이란 어떤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해답을 말한다. 파스타가 충분히 맛깔나지 않다는 문제에 대해 면수가 부족해서 밍밍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는 것처럼 말이다. 가설을 세우고 나면 이 가설이 객관적으로 옳은지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면수의 양을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늘려가듯 가설 검증을 위해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변인을 '조작 변인'이라 한다.

조작 변인 외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일정하게 처리해야 하는 '통제 변인'이다. 면수와 함께 오일이나 마늘을 모조리 더 부어버린다면 어떤 것이 맛의 핵심인지 알 수 없으니 다음 번 요리에서도 우왕좌왕하게 된다. 정확한 결론을 얻으려면 의도에 맞게 조작할 변인만을 적절히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조작 변인과 통제 변인으로부터 영향받는 결과물인 파스타의 맛은 '종속 변인'이다.

어떤 탐구의 종속 변인으로 파스타보다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면 더 정밀하고 꼼꼼하게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질병이나 생사에 관련된 연구는 특히나 그렇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파스퇴르는 오랫동안 방치해 병원성이 약해진 콜레라균을 닭에게 먹이면 추후 강한 콜레라균에 감염되어도 닭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후 비슷한 방법으로 여러 질병에 대한 예방 물질을 개발하며 백신의 의미를 확장시켰다.

파스퇴르는 용감하게도 백신의 효과를 공개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가축 무리에 독성을 약화시킨 탄저병균을 접종하고, 몇 주 뒤에는 독성이 강한 탄저병균을 다시 주입한 것이다. 그리고 백신을 반대하는 진영에서 요구하는 대로 아무것도 처리하지 않은 가축 무리에도 독성이 강한 탄저병균을 주입했다. 백신을 접종한 실험군 가축들은 멀쩡했지만 아무런 처리를 하지 않은 대조군 가축들은 며칠 내로 숨을 거뒀다.

이 실험에서 변인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탄저병균을 주입하는 시기나 접종하는 양, 또는 가축의 초기 상태가 제각기 달랐다면 파스퇴르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옳더라도 사람들은 실험 결과를 신뢰하지 못했으리라. 백신의 상용화가 먼 미래로 미뤄졌을지도 모르겠다. 임상 시험에서 변인의 통제가 명확하지 않았던 코로나19 백신을 향해 일부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니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파스퇴르의 실험만큼 중요한 주제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상황 속에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 보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다. 백신 개발처럼 인류를 구원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올바른 방향의 탐구가 내 삶을 구원해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맛깔난 한 끼 식사라도 만들어질 것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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