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점 발굴
훈민정음 창제 시기 제작 추정 한글 활자 포함
천문시계 부품 등 과학 유산 실물도 대규모 발굴
서울 도심 종로구 인사동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를 포함해 15∼16세기에 제작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29일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79번지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해 물시계 부속품 주전,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銃筒) 8점, 동종(銅鐘)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기록으로만 전하던 조선 전기 과학 유산인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과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 부속품 '주전'(籌箭)의 일부로 보이는 동제품도 발굴됐다. 세종 시대 과학 유산 흔적이 대규모로 발굴되기는 처음이다.
"구텐베르크 인쇄술보다 앞선 우리나라 금속활자 기술 실체 알려줘"
이번 조사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유물은 금속활자다. 한자 활자 1,000여 점과 한글 활자 600여 점이 나왔다. 조선 전기의 다양한 금속활자가 한곳에서 발견된 첫 사례로, 구텐베르크가 144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할 무렵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유물이 포함됐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제작한 해의 육십갑자를 이름으로 붙이는데, 1434년 제작했다는 갑인자(甲寅字)를 비롯해 1455년에 만든 을해자(乙亥字), 1465년 활자인 을유자(乙酉字)로 보이는 유물이 확인됐다.
아울러 한글 금속활자 중에는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적으로 사용된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활자와 한문 사이에 쓰는 한글 토씨인 '이며'나 '이고'를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이른바 '연주활자(連鑄活字)' 10여 점도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다양한 크기의 한글 금속활자가 출토됐다"며 "아직 금속활자 분석이 끝나지 않았는데, 종류가 다양해 인쇄본을 찍을 때 사용한 조선 전기 활자의 실물이 추가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격루와 같은 자동 물시계에서 시간을 알리는 시보(時報) 장치를 작동시키는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은 활자를 제외한 다른 유물들처럼 잘게 잘린 상태로 발견됐다.
동그란 구멍이 있고 '일전(一箭)'이라는 글씨를 새긴 동판, 걸쇠와 은행잎 형태 갈고리가 결합한 구슬 방출 기구로 구성된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 나오는 주전 관련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동제품이 주전이라면 세종 20년인 1438년 제작된 경복궁 흠경각 옥루나 중종 31년인 1536년 창덕궁에 새로 설치한 보루각 자격루의 부속품일 가능성이 있다. 옥루는 현존하는 부재가 전혀 없고, 자격루는 물통 일부가 남아 국보로 지정됐다.
일성정시의는 낮에 해시계로 사용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도구다. '세종실록'에는 1437년 일성정시의 4개를 제작했다고 기록됐는데, 전래하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출토 유물을 복원하면 원형 고리 3점이 되는데, 명칭은 각각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이다.
총통은 소형 화기인 승자총통 1점과 손잡이를 부착해 쓰는 소승자총통 7점으로 구성되며, 길이는 모두 50∼60㎝이다. '계미(癸未)' 글자가 있는 승자총통은 1583년, '만력무자(萬曆戊子)' 글자를 새긴 소승자총통은 15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동종은 '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이라는 글자가 있어 1535년 4월에 제작됐음이 확인됐다. 다만 왕실에서 발원(發願·신에게 소원을 빎)한 동종과는 서체가 다른 것으로 분석됐다. 양식상으로는 15세기 후반에 제작한 '전 유점사 동종'이나 '해인사 동종'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모든 유물은 1588년 이후에 같이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않은 것 같다"며 "보존 처리와 추가 연구를 거치면 조선 전기 인쇄술과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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